모퉁이

가을 by 앨리 스미스

바보어흥이 2019. 4. 8. 13:52

어떤 사람이 국회 의원을 죽였대요. 그녀가 따라붙으려 애쓰며 대니얼의 등에 대고 말한다. 어떤 남자가 총을 쏘아 죽인 뒤 칼을 들고 달려들었대요. 총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듯. 하지만 이미 지난 뉴스가 됐어요. 예전 같으면 일 년은 갔을 뉴스지만. 요즘 뉴스는 정신없이 쫓기던(speeded-up) 한 무리의 양 떼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죠. (* 토머스 하디의 [미친 군중으로부터 멀리]에 나오는 장면) 54p

 

'우리 이웃 사람에 대한 말로 그린 초상화' p66

 

우리는 때로 평생을 기다려서 평생의 친구를 만나게 된단다. p71

 

투표가 끝난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 (...) 문에서 시작해 위쪽 창까지 전면에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글자들이 검은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72-73p

 

3킬로미터밖에 안 되잖아요. 엘리자베스가 말한다. 

그게 아니라 뉴스에 지쳤다고. 그녀의 어머니가 말한다. 별것도 아닌 일에는 대단한 일인 양 호들갑을 떨고 정말 끔찍한 일은 단순하게 다루는 거 말이야. 분노에 지쳤고, 야비함에 지쳤고, 이기주의에도 지쳤어. 그걸 막아 내려는 노력이 전혀 없는 데 지쳤고, 오히려 그걸 조장하는 데 지쳤어. 현재의 폭력에 지쳤고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가올 폭력에도 지쳤어. 거짓말쟁이들에 지쳤다. 아닌 척하는 거짓말쟁이들에, (...) 적대감에 지쳤어. 무기력적대감에 지쳤어.

그런 단어는 없을걸요. 엘리자베스가 말한다.

맞는 단어를 모르는 데도 지쳤어. 그녀의 어머니가 말한다. 76-77p

 

그녀가 누구인지 이제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당시에는 역사였던 것이 이제는 시시한 하나의 각주에 불과할 것이다. 그 각주에 그가 덧붙인다. 그녀는 맨발이고, 우연하게도(역사, 각주) 그가 알기로 [지배하라, 영국이여(Rule Britannia)]가 처음으로 불렸던 곳인 장대한 저택의 복도를 밝힌 여름밤의 빛 속에 혼자다. p120

 

희망은 바로 그거야.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타인에게 하는 부정적인 행위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 그것뿐이야. 그들도 우리처럼 모두 인간이라는 것을, 사악한 것이든 정당한 것이든 인간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세상에 눈 깜짝할 순간만 머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런데 그 눈 깜짝할 순간은 다정한 윙크일 수도 있고 자발적인 무지일 수도 있는데 자신이 두 가지 다 가능한 존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해. 그리고 악이 턱까지 차 있다 해도 그 너머를 볼 준비를 해야 해.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내가 아주 잘 아는 친애하는 오빠의 따뜻하고 매혹적이고 쓸쓸한 영혼을 향해 직접 말하려고 해.) 시간, 우리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그것을 허비하지 않는 거야. 248p

주말에는 엘리자베스의 아파트 건물 근처의 거리에서 깡패 같은 자들이 떼를 지어 [지배하라, 영국이여]를 불렀다. 영국은 파도를 지배한다. 먼저 위는 폴란드인들을 잡을 테다. 그다음에는 이슬람교도들과 날품팔이들을 잡을 테고, 이어서 동성애자들을 잡을 테다. "아무리 도망쳐도 우리는 당신들을 쫓아가서 잡을 거예요." 바로 그 토요일 낮 라디오 4에서 방송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우파 대변인이 여성 하원 의원을 향해 소리쳤다. 256p

자신감이 높을 때 뭐든 예술일 수 있었다. 313p

포스트 브렉시트 소설이라는 출판사 혹은 현지 언론의 네이밍에 무릎을 탁 친다. 어린 소녀와 이웃 노인과의 우정 속에 화합의 가능성을, 잠들어 있는 101세 대니얼 글럭의 꿈을 통해 지금과 달라 더욱 낭만적이고 매력적이던 1960년대 영국의 사회 문화 단면을, 엘리자베스의 현재를 통해 난민 문제와 더불어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가득한 현재 영국의 사회상이 조각조각 드러나며 교차된다. 이음새의 불분명함이 매력적으로 살아나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