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sthole

급작스러운 광주

바보어흥이 2017. 5. 29. 14:30

일요일에는 급작스럽게 광주를 다녀왔다. 날이 화창하고 맑았다. 너무 맑았다. 

휴일에 이렇게 먼 곳까지 불러 선배에게 절을 시키는 후배의 영정 사진을 보니 꿀밤을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너무 일찍 도착해서 시신과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했던 모양이다. 다들 경황이 없었고 준비된 것도 없었다. 우리는 눈치껏 테이블에 비닐을 깔고 휴지를 놓았다. 또래를 보자마자 궁금한 게 많았던 친척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우리 또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중간중간 어른들과 함께 눈물을 터뜨렸다. 


후배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평생 세무사로 살아온 분답게 군더더기없는 인상이었다. 아주 침착하고 침울하게 맞이해주셨지만 곧 내가 앉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쪽에서 통곡 소리가 크게 났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그토록 이성적인 사람을 무너지게 했다. 어머니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부모에게 이보다 더 큰 불효는 없을 것이다.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후배가 미워졌다.  


내내 당사자보다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짠한 마음이 들었고 한차례 울고 나니 그저 후배와 다시는 차 한잔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지나면 점점 멀어지는 사이들도 있는데 그렇게 잊혀져가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싶다가 영영 못 본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올라올 때는 후배를 보고싶다는 생각뿐 감정적 동요는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는데 집에 돌아오니 자꾸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후배의 이름을 불렀다. --야 왜 그랬니 라든가 언니는 이렇게 잘 살아보려고 한약도 먹는다 라든가 아이고 어떡하니 라든가 맥락이 없는 말들이 툭툭.


뒤처리를 (아마도) 맡아준 후배의 헤어진 남자친구나, 전 남자친구 모두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자책감을 얻은 듯했다. 후배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여렸고 외로웠고 자생할 수 없을 만큼 약했다.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전 남자친구가 일하는 곳에 지원한 모양이었다. 전 남자친구가 그만두는 게 낫지 않냐고 종용을 했고 후배는 그러고도 하루 더 출근한 뒤 그날 저녁 페이스북에 인삿말을 한 줄 남겼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나 이후에 다녀간 선배로부터 얼이 빠진 얼굴로 앉아 있던 옛날 남자친구와, 울고 또 울기만 했다는 직전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주변 사람을 들들 볶아서라도 의존했으면 좋았을 텐데...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졌을 법한 아이다. 그래서 후배는 인생의 두 남자들을 찾아갔고, 과거에 '사주를 봤는데 인생에 세 남자가 있다더라'라는 sns를 올린 것과 다르게 세번째 남자는 만나기도 전에 가버렸다. 


나 또한 죄책감이 들었다. 후배가 아무도 보지 않을 싸이월드에 전체공개로 마구 글을 올렸던 것을 나는 조용히 봐왔고 상태가 안 좋구나 했을 뿐 오히려 만나자는 말을 하기가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 내 주변에는 너무나 아픈 사람이 많고 나는 가끔 그들이 왜 이렇게 내 주변에 많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약한 아이가 어떻게 죽을 용기를 냈는지 다시 생각해도 모르겠다. 후배가 기르던 두 마리의 고양이와 새로 입양했다던 한마리의 유기견이 걱정되었다. 후배가 죽기 전에 한 말처럼, 나를 죽여도 살인이다. 생명을 죽였기 때문에 죽어서도 행복하지 못한다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이럴 때는 그냥 죽으면 모든 게 끝 그 자체이길 바란다. 업보도 없고, 고통도 없고 그냥 암흑 그 자체라면 후배를 떠올릴 때 좀 더 편안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