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못의 굵기와 크기
나사못의 굵기와 길이, 그 종류의 끝은 어디일까. 스텐와셔 양날피스, 접시머리, 목공용 피스, 석고피스, 매그니 코팅, 칼블럭헤드, 굵기는 약 3mm~ 4.2mm 길이는 약 13mm~50mm. 이름 자체에도 체계가 부족하다. 어떤 것은 재질로, 또는 용도로, 또 모양으로 이름을 붙여 통용하는 것을 보면 알 만한 사람들끼리 통하는 은어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나사못을 완벽하게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최소 엄청난 정리벽이 아니고서야 그것들에 체계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 아닐까.
주말에 베란다를 정리하며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의 60%를 채워버렸다. 시작은 소파를 분리할 알맞은 드라이버를 찾으려던 것이었는데 베란다의 공구는 일종의 매의 구역이라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대충 크기로 공구들을 분류했다. 망치, 전동드릴, 실리콘 총 같은 길죽한 것끼리 모아 두었고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다 남은 듯 사용설명서와 나사들이 들어 있는 봉투는 그대로. 드라이버는 드라이버끼리 두려고 했지만 팔뚝 반만한 길이부터 시계 조립을 할 법한 초정밀 드라이버까지 너무 다양해서 어쩔 수 없이 싱크대에서 작은 지퍼백을 가져와 대충 비슷하게 생긴 것끼리 분류했다. 나사못들은 5년 전쯤 주워온 6단 선반에 우르르 쏟아져 있어 칼블럭, 번쩍이는 철나사못 등 몇 가지만 집어 원래의 포장재에 담고 나머지는 한 봉투에 담아 버렸다.
베란다의 먼지는 공평하게도 어디에든 새까맣게 쌓여 있어 손과 손톱 사이까지 구석구석 때가 끼었다. 바니쉬, 코팅제, 페인트 등은 모조리 버렸다. 한번 뜯은 것들을 또 사용할 수 있을까 싶어 보였다. 그 외에도 베란다에는 마당에서 길러 짰던 호박즙, 큰 덩어리의 뽁뽁이, 아이스 팩 등 버릴 것이 많았다. 마치 멜키아데스의 방을 정리하려는 우르슬라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해하지 못한 물건들이 아주 오래 방치된, 세월의 고요함을 뒤적여냈다.
너무나 정직하게도 손이 닿은 만큼 공간은 쓸모가 생긴다. 그즈음 낮잠에서 일어난 매가 베란다 바닥을 물청소했다. 등산 의자 두 개를 펼쳐놓았다. 오후 내내 그곳에서 이웃들 몰래 담배를 피웠다.
결국 소파를 분리할 드라이버는 매가 찾아 주었다. 드라이버의 머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아마 나는 평생 왜 그게 알맞은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기시감이 들었다.
도도새가 며칠 전 더 이상 그녀를 이죽거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과거에 쓴 글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유받아 읽어 보곤 무슨 의민지 알았다. 여동생을 잃고, 내일을 기대하지 않고, 죽음에 가책을 느끼는 사이에 나는 분하게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고 나서 나 또한 우연히 같은 경험을 했다. 책장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읽기 시작했고, 읽으면서 아 나는 더이상 그를 예전처럼 이죽거릴 수 없구나 느꼈다. 현실에서의 관계성은 여전하지만 결국 누군가를 진심으로 감동하여 울게 되면 예전과 같아질 수는 없는 법이다.
한 사람의 어둠의 심연을 엿보고, 그 면면을 지나온 흔적을 엿보았다. 그 속에서 내가 불편해할 지점들이 얼마나 있든간에 당시의 진실이 담겨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소중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위해 방어적 공격력이 높아질 수도 있다 하고 이해의 영역을 넓혀 본다. 여동생이 어느날 갑자기 죽고 나서 오늘의 행복을 위해 조금 더 뻔뻔해질 수도 있는 것처럼.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그토록이나 어렵고 난해하다. 나는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이 역시 내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오늘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