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나에게 청하는 악수

바보어흥이 2012. 8. 3. 11:42

나에겐 종이도 있고 펜도 있고 시간도 있다. 심지어 차도 있고 집도 있고 자리도 있으며 애인도 있고 애완동물 부모님 친구도 있다. 내가 지금 배워야 할 것, 찾아나서야 할 것은 열의뿐이다. 나에게 온전한 하루가 있는데도 나는 그 하루를 무의미함으로 가득 채운다.

 

요즘엔 실비아플라스의 일기, 발터벤야민의 일기를 훔쳐보았다. 그리고 나는 한가지를 깨달았다. 의지를 기록할 때는 대부분 한문장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깨달은 통렬한 의미는 단 한문장이지만 그 뒤엔 수많은 문장이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훗날 돌아보면 나는 그 한문장을 보고도 당시의 마음이나, 이유 등을 떠올리지 못한다. 나는 훗날의 나를 설득하는 과정을 끈질기게 기록했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 나는 계속 울고만 싶다. 기대가 없어서다. 눈치채지 못하게 어느덧 나를 지배한 이 좌절과 패배가 일상이자 곧 '나'가 되어버렸다. 스물둘셋 즈음에 나는 내가 극렬히 나의 좌절감과 투쟁할 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투쟁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깜빡한 모양이다. 몇개월 전을 돌아보면 학습이다, 소설을 쓴다 하며 바쁘고 지쳐서 지냈던 나날도 있다. 잠시 쉬자, 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나를 오랫동안 안일하게 몰고갈 것인지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생활의 활력은 소소한 취미가 될 수도 있다. 등산이나, 악기 연주나, 운동 등. 무엇을 배우는 것 또한 아주 좋을 것이다. 근데 하고 싶은 게 없다. 시간과 체력을 투자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건 열정뿐이다.

 

사그라든 연애의 불씨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아마 지금도,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가 혼미할 정도로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면 나는 이를 몰랐을 것이다. 내 처지를. 무의식적으로 투정부리려는 나를 자꾸 자제시키는 것은 지금 내가 그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의 연애에서라면 그가 나를 불행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미워할 것이다. 지금은 그러려는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안다. 심지어 나는 혼자 있고 싶다. 내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것이 내 삶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요즘 나의 눈길이 닿는 모든 것들은 나를 사로잡지 못한다. 내가 그것들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난처럼 난독증이라 부르고 있다. 나는 몰입하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않는다. 머리라도 자를까. 나는 소소한 변화가 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기분전환. 그것도 참으로 좋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즐기는 것. 그것에 분명 해답도 있을 것이다. 대중적인 것에 대한 불신도 많이 버렸다. 

 

단순한 우울증일까. 아닐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번만큼은, 개인의 우울을 타인에게 털어놓아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누군가 해결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나와 잘 지내면 그만인 문제다. 적어도 내 욕망에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넘치면 아무것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