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노동자의 risk
바보어흥이
2008. 11. 19. 11:31
risk설이 있다. 대부분 자본가의 이윤 획득을 정당화 할때 쓰이는 말이다.
자본가가 고정자본과 가변자본을 투자하고 가변자본에서 이윤이 창출하면 그 이윤을 자본가가 갖는 이유는, 초기자본의 risk를 감수하고 투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물론 노동가치설을 전제로 하고). 그러나 실제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가령, 우리 회사는 상습적으로 임금체불(약 3일에서일주일 정도)을 하는데 그럴경우 '나'는 한달벌어 한달먹고 사는 사람으로서의 손해를 보게된다. 월급날 이후로 조정되어있는 각종 지급일들. 카드결제일, 이동통신결제일, 보험료, 월세 등에 대한 지불이 모조리 이루어지지 않으며 개인적인 신용경색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가는 자본의 흐름에 주체적인 입장에 있으므로 개인의 신용경색에 대한 대처를 미리 할 수 있게 되지만 노동자는 그렇지 않다. 극단적인 수용자의 입장으로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할 길이 막막해진다. 흔히 노동자에게는 '노동'을 팔 권리가 있으므로 다른 직장을 찾아가면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이론적으로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만큼 직장이 널려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실제로 노동자의 '노동 팔기'는 매우 제한적이다.
자본가의 risk는 곧 노동자의 risk를 전제로 한다. 노동자의 개인적인 risk는 자본가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자본가의 risk는 곧 노동자의 risk이다. 이렇게 오래토록 불황이 사회를 뒤덮고 있을 때는 더 그러하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risk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규모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 큰 돈의 위기보다 작은 돈에 모든 것이 걸려있는 사람들의 위기가 더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본가가 고정자본과 가변자본을 투자하고 가변자본에서 이윤이 창출하면 그 이윤을 자본가가 갖는 이유는, 초기자본의 risk를 감수하고 투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물론 노동가치설을 전제로 하고). 그러나 실제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가령, 우리 회사는 상습적으로 임금체불(약 3일에서일주일 정도)을 하는데 그럴경우 '나'는 한달벌어 한달먹고 사는 사람으로서의 손해를 보게된다. 월급날 이후로 조정되어있는 각종 지급일들. 카드결제일, 이동통신결제일, 보험료, 월세 등에 대한 지불이 모조리 이루어지지 않으며 개인적인 신용경색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가는 자본의 흐름에 주체적인 입장에 있으므로 개인의 신용경색에 대한 대처를 미리 할 수 있게 되지만 노동자는 그렇지 않다. 극단적인 수용자의 입장으로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할 길이 막막해진다. 흔히 노동자에게는 '노동'을 팔 권리가 있으므로 다른 직장을 찾아가면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이론적으로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만큼 직장이 널려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실제로 노동자의 '노동 팔기'는 매우 제한적이다.
자본가의 risk는 곧 노동자의 risk를 전제로 한다. 노동자의 개인적인 risk는 자본가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자본가의 risk는 곧 노동자의 risk이다. 이렇게 오래토록 불황이 사회를 뒤덮고 있을 때는 더 그러하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risk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규모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 큰 돈의 위기보다 작은 돈에 모든 것이 걸려있는 사람들의 위기가 더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