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느릿한 이별

바보어흥이 2021. 4. 15. 09:20

아침 7시 30분, 출근하려는데 현관 러그 위에 앉아 있는 쑝과 눈이 마주쳤다. 

어제부터 쑝의 눈가에 덕지덕지 굳은 검은 눈꼽이 완벽하게 떨어지지 않아서 목욕을 시켜야 하나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쑝이 너무 작아 보여서 꼭 안고 함께 체중계에 올라 보았는데 다행히도 체중이 줄어들진 않았다. 오히려 조금 늘어서 다행이었다. 이가 아픈 것 같아 평생 잘 안 해온 양치를 억지로 해보기도 했는데 딱히 입 냄새가 줄어들거나 하진 않았다. 사료는 다시 딱딱한 채로도 먹고 있다. 이제야 쑝의 얼굴에서 나이가 보인다. 16세. 고양이는 참으로 동안이다.

 

인생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오래 만나온 존재. 스무살 무렵에는 공적 영역 사적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살았기에 그 농도로 생각해 본다면 쑝은 정말 잃고 싶지 않은 가까운 존재다. 가족이면서도 가족보다 더. 쑝 앞에서 나는 한번도 솔직하지 않은 적이 없어서. 

 

아주 천천히 오늘에 감사하며 이별을 준비한다. 이별이 가까이 다가와서가 아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오기 때문이다. 쑝은 내 청춘의 증인이다. 나는 쑝 인생의 증인이다. 쑝의 인생에 태어나서부터 약 반 년간은 언제나 미스테리로 남을 것이다. 왜 꼬맹이 주제에 아무런 위기에 대한 의심도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는지, 엄마는 누군지, 아빠는 누군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미스테리는 있어야 신비하니까. 몹시 궁금하면서도 몰라도 괜찮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훗날 우리가 함께 지냈던 시간이 그리울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지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서로의 존재를 응원하며 지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