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이틀 내내 로또를 찾으러 다녔는데 결국 사지 못했다. 애인이 꿈에서 똥을 봤대서 일어난 주말 해프닝이었다. 이 없이 잇몸이라고 연금복권을 샀는데 발표 일까지는 꽤 남았다.
일확천금으로 삶이 바뀔 거라는 기대는 오래전에 접은 것 같다. 아마 당첨이 되어도 나는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이고, 연애를 계속 할 것이고, 짬이 나는 대로 여행을 다닐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금액이 부족해서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에 인생이란 돈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좇아갈 때, 그리하여 만족을 얻기까지 노력하는 과정만이 진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권에 대한 기대는 꽤나 즐거운 유흥이다. 행복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꿈에 그리던 집을 짓거나, 건물을 사서 월세를 받거나, 사고 싶었던 귀여운 디자인의 차를 사거나, 백화점에 가서 비싼 것을 마음껏 골라 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유럽여행을 가서 실컷 즐기고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되고 싶은 무언가의 욕망과 싸우는 일과는 조금 별도로,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행복한 상상이다.
나이가 드니까 너무 좋다는 사람들을 몇몇 보았다. 대부분 여자들이었고, 마흔쯤이었고,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이었으므로 그것을 완전히 진심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당시 나는 이십대 중반이거나 후반이었고, ‘괜히 저런다’고 생각했다. 질투일 수도 있고, 자격지심의 다른 발현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이 되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나는 적어도 예전만큼 왜곡된 방식으로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사랑이 많이 필요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는 무한정의 긍정, 그것이 존재를 긍정하게 하는 첫 출발이라고 믿는다. 삶이라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믿음, 나라는 사람에 대한 긍정. 또한 사회에 편입되기 시작하면 친구들이 주는 위안이 필요하다. 내 편이 있다는 안도, 적어도 내가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내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친구들이 준다. 또 성인이 되면 내가 여자여서, 내가 남자여서인 사랑을 경험한다. 남이지만 가족처럼 나를 사랑해주는 단 하나의 존재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 어떤 관계보다 치명적인 행복이다. 그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고, 그것을 잃었을 때 나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슬펐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좌지우지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배우자에게도, 아이에게도, 약자에게도, 세상 전반에 대해서도. 그냥저냥 살아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희생도 강요당해보고, 자격지심에도 빠져보고, 하여튼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아직은 나 또한 완전히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이십대 시절과 같지는 않다. 나름대로 혼자 잘 살아보려고 하는 의지가 높아졌다.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아등바등하게 되었다. 그들의 사랑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것만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게 되었다는 소리다.
그래서 이제 애인이 바쁘더라도, 급할 때 친구가 닿지 않아도 상처받지 않는다. 세상에 온전히 나만 혼자 있는 것 같은 시간을 조금 더 잘 대처하게 되었다. 여전히 목적 없는 공간에 남겨졌을 때 미아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긴 하지만 이전에 비해 조금은 나아졌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이가 드니 좋다. 내가 조금씩 성장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싶다. 그래도 물론 좋은 꿈꾸면 로또를 사긴 할 거다. 위에 나열한 것들. 모두 다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