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봄동
어젯밤에는 잠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잠을 못자고 뒤척인 비직장인들이 많았을 밤이었다. 새벽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 나는 며칠전 황사비로 더러워진 내 차가 깨끗해지겠구나 생각하며 곧바로 다시 잠이 들었다. 기적처럼 나는 아주 빈약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어제는 봄동과 냉이를 먹었다. 좋아하는 것을 먹어서 뿌듯했다. 좋아하는 것을 실컷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보기에 실컷 청춘을 즐기는 사람들도 저마다 불행에 몸서리를 친다. 누군가에게는 나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겠다.
건강하지 못하면 시간도 없다. 주중에 나를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피로뿐이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피로를 푸는 일이 되었다. 그런 하루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빨간 립스틱으로, 노란 가디건으로, 반짝이는 클러치백으로도 나는 매우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몇 년 전에 다이어리에 많은 여자들이 울음을 참기 위해 지갑을 들고 무엇을 사러 나간다고 썼다. 거기에서 지금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의 아홉시간을 저당잡히고, 그로인해 여덟시간을 수면에 바쳐야 하는 하루 속에서, 내가 그나마 남는 시간을 즐길 수 있기 위해서 보약을 먹기로 결심했다. 여기까지 결심하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내가 가장 무서운 것은 어린 시절 이솝우화에서 읽었던 원숭이의 일화다. 원숭이는 사람들이 성실한 나무꾼을 칭찬하는 것이 부러워 혼자 나무를 이리로 옮겼다 저리로 옮겼다 하며 부지런을 떨었다. 사람들은 비웃었다. 마치 그것처럼.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모조리 쓰고 돈을 벌기 위해 소모된 그 무엇을 채우기 위해 다시 돈을 쓰는 일, 그것이 나는 가장 두렵다. 그래도, 그래도 오랜 고민 끝에 그 플러스 알파라도 누리기 위해 보약을 먹기로 한 것이다. 그 플러스 알파를 즐기는 일은 내 지난 시간과 나를 정당화해줄 유일한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