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sthole

봄의 양면성

바보어흥이 2015. 4. 29. 11:47

그런 날이 있다. 묘하게 들뜨고 기분이 가라앉지 않은,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멈춘 것도 아닌, 밝아야 할 시간인데 어슴푸레한 사위 속에 파리하게 형광등 불빛이 떨리는, 춥지 않은데 어디선가 습기가 달라붙어 벗어날 수 없을 듯한 날.

무자비하게도 하루가 시작되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내가 무자비한 노동자일 듯하지만)출근은 지연되지 않았고 나는 제 시간에 내 책상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정신과 마음은 여전히 출근을 하지 못하고 서교동이나 연남동 근처 카페를 어슬렁거리며 담배나 태우고 있다.

마음이 한껏 무거워진다. 어느 곳에나 전해질 수 없는 마음들이 각각의 무게를 가지고 나에게 전달되어온다. 어느 때는 가해자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피해자이기도 한 사람들에 나는 공정하다기보다는 연민하는 마음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도닥이는 마음으로 곁에 있음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아프고, 죽고, 등단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이사하고, 계약하고 인생의 각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난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나 고민해야 할 시점일 수도 있지만 나는 곧잘 부초처럼 휩쓸리는 타입으로 사사건건 그 일에 많은 고민을 쏟곤 한다.

좋은 말은 너무나도 많은데 좋은 행동은 너무나도 빈약하다. 그래서 나는 곧잘 글 쓰는 데 회의를 느낀다. 물론 읽는 데에는 여지 없이 무한한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