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책>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디를 펼쳐도 상관 없는 책.
알고 보니 시인의 하나뿐인 산문집. 한 존재가 무수히 지어내는 조각 난 시들이 무질서하게 담긴 책.
30(142) 1932. 1. 26
타인의 실존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사람이 살고 있고, 자신처럼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차이가, 구체적인 거리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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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부끄럽지 않다. 무관심은 인간들 사이에 있을 만한 경멸과 같다. 그것은 살인자처럼 서로 죽이는 줄도 모르고, 군인처럼 서로 죽어가는 중인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죽어가는 중인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면서, 사람들이 서로를 죽일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무관심은 타인들도 영혼이 있는 사람이라는 심오해 보이는 관념에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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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담배 가게의 점원이 자살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거짓말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불쌍하게도, 그 또한 존재했었다니! 우리는 모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를 몰랐던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를 알고 있었던 우리 모두는 말이다. 내일이면 우리는 그를 더 잘 잊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혼이 있었다. 이것은 틀림없다. 자살하려면 그것은 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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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타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 그것은 무겁게 끌려내려가는 이 일몰이 희미하지만 강렬한 색을 붙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는 일몰의 흐르을 보지 못한다.
34(158) 1931. 12. 16
우연히 목격했거나 단지 함께 살기만 했다는 이유로 우리 것이었던 모든 것은 정확히 말해서 우리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된다. 그러니 오늘, 내가 알지 못하는 갈리시아의 한 마을로 떠난 사람은 사무실의 배달원이 아니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또 인간적이기 때문에 나의 인생의 본질을 구성하는 일부가 떠난 것이었다. 오늘 나는 몸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나와 정확히 동일한 사람이 아니다. 사무실의 배달원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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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무거워지고, 더욱 늙고, 더욱 의지가 약해진 나는 높은 책상에 앉아서 어제 하던 장부 정리를 계속한다. 그러나 오늘의 작은 비극은 사색과 함께 중단되고, 나는 자동화 과정을 따르는 장부의 계산을 힘겹게 억제해야 한다. 일부러 무기력해져서 나 자신의 노예가 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일을 할 수 있다. 배달원이 떠났다.
35(159) 1930. 4 21
꿈에 속하는 감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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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으로 보지만 느끼지는 않는다. 인간 동물이 우글우글 몰려 있는 긴 도로는, 글자는 움직이지만 아무런 뜻도 없는, 떨어진 간판이나 매한가지이다. 집은 그저 집일 뿐이다. 우리는 사물들을 명확히 볼 수는 있지만 우리가 본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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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 느끼는 것은 지루함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고통이 아니다. 또다른 개성을 가지고 잠들고 싶은 욕망이다. 오른 월급을 가지고 잠들고 싶은 욕망이다.
37(130) 1931. 4. 11
누군가 괴물의 표본을 그리고 싶다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졸린 영혼에게 밤이 가져다주는 그런 것들을 사진을 찍듯 말로 표현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잠을 자고 있다는 은밀한 핑계가 없으면 이런 것들은 꿈처럼 일관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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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은 순난 나는 나를 잃고, 뭔가를 믿으면 의심하고, 얻은 것이 있어도 소유하지 못한다. 나는 마치 산책을 하듯이 잠을 자지만, 깨어 있다. 나는 잠을 자듯 깨어 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속해 있지 않다. 결국 인생은 그 자체로 거대한 불면증이며,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에는 불현듯 명료하게 잠을 깨우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