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

사는 게 뭐라고 by 사노 요코

바보어흥이 2018. 3. 23. 10:47

나에게는 생의 마감 즈음에는 어떤 모습을 하는 것이 옳은가를 미리 정해두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친구와 백발 할머니들의 여행 사진을 주고받으며 이건 너라며 그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나이 든 여배우 중 한 명을 가리켜 이렇게 늙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넘쳐흐르도록 많아지면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가 도저히 어지러워 글을 읽을 수가 없다고 하시는 걸 보니 여의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드디어 제대로 잡고 읽게 된, 고령화의 나라 일본 할머니 중 에세이스트로 유명한 사노 요코의 일상은 더없이 솔직하여 자꾸만 뭐랄까 씁쓸한, 그러나 상대가 사랑스러울 때 나오는 표정을 짓게 한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게 울컥거리기도 한다. 부부 중 한 명이 먼저 죽고 남은 생을 홀로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을 어떤 가식도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많지 않은 텍스트다. 

전 세계적인 인구 폭발의 시기의 정점인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은 아주 늙지도 않았다. 아침을 먹을 것이 없어 근처 카페에 가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는데 벽을 따라 놓인 테이블에 주르륵 할머니들이 앉아 있다. 화려한 프릴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동네의 유명한 할머니를 따라 들어간 국수집에서 5000원짜리 야채튀김덮밥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문득 사노요코는 이 노인들의 저녁은 어떠할지 궁금해한다. 치매의 기운, 잔고의 확인, 식구 같은 텔레비전, 약에 의해 조종되는 인형인 자신. 시크하지만 현실을 단단히 밟고 서 있다.  

나는 내가 담당한 책을 통해 그녀가 기르던 고양이 후네의 죽음을 어떻게 보았는지 알고 있다. 암이라고 유난을 떨지 않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생물의 감동적인 생의 마감.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녀는 생의 끄트머리에서도 후네의 죽음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책은 솔직한 글 쓰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용기를 준다. 명절에 명절 음식을 안 먹는다는 지인에게 속으로 '그러고도 일본인이냐' 하고 구시렁거리고, 모르는 젊은 애들이 잔뜩 나와 모르는 이야기를 하며 웃어대면 가감없이 불쾌감을 드러낸다. 남들에게 고독한 노인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비디오 대여점 가기를 포기한다. 남을 불쾌하게 만들어서 욕을 먹었던 일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하고 만다. 자신의 누추함도 그냥 말해버린다. '그만 했으면 좋았을 걸' 하며 세 번이나 문방구 노인에게 계산을 시켜 결국 한소리를 들어도 '힘내요, 영감님' 하며 천역덕스럽게 군다. 대중 앞에 나설 때 보통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나쁜 척만 하는 사람, 지적인 사람, 유쾌한 사람, 씩씩한 사람, 신경질적인 사람 등 어떤 컨셉을 내세워 어필하는 게 대부분인데 이 할머니는 도통 오리무중이다. 귀여웠다가 신경질적이었다가 똑똑했다가 짠했다가 그야말로 인간답다. 그게 밉지가 않고 인정할 만할 뿐 아니라 무언가 감동적인 구석이 있다. 역시 수준 이상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도 매력에 한몫 할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설사 이기적일 때에도 본인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알고' 그렇게 할 뿐 아니라 인정도 한다. 그녀가 싫어하는 것은 보통 공공에 해로운 것이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보통 공공에 이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