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실천하지 않는 삶

바보어흥이 2013. 12. 13. 11:57

예전에 한 교수님이 이야기하셨다. 보수는 부패 때문에 망하고, 진보는 분열 때문에 망한다고. 스무 살, 아무것도 모르면서 큰소리 치던 시절에는 '아~ 정말 그렇구나!' 하며 감탄했는데 조금 지나 돌아보니 오래되고도 공고한 우스개 농담이다.

 

젊은 작가들이 이번 현대문학 사태에 대해 알음알을 주변 지인들을 모아 성명서를 준비했다. 그랬더니 그들의 선배뻘 되는 한 작가가 그런 양상 자체를 두고 '젊은 작가들의 문학적 외연을 넓히는 일, 포즈일 뿐'이라며 자신의 sns에 비방의 의견을 올렸다. 그러나 반대의 뜻을 담은 댓글이 소수 올라오자 그는 글을 지워버렸다. 나는 이런 일들에 대해 철저히 외부에 서 있는, 말하자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므로 그저 사태의 흐름을 지켜보는 무명 씨 1인일 뿐이지만 학창시절, 무언가 해보자고 했다가 대안 없는 비판들이 무수히 쏟아져 박살이 났던 기억이 나 매우 씁쓸해졌다. 

 

모르겠다. 다른 세대가 어떤지 몰라도 내가 속한 세대는 '튀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면서도 튀는 자를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말하자면 소심함과 질투가 적절히 뒤섞인 세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평생 가도 그럴 재주가 없지만 sns로 여론을 잘 형성하고 리드하는 숨은 고수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의견을 즐겨 읽다가도 그 모습 속에 묘한 꼰대 기질을 볼 때 불편해진다.

'나를 찬양하는 것은 좋지만 나를 반대할 거라면 당장 꺼져'

그래서 의견을 표출하는 일은 어렵다. 숱한 반대 자들의 의견에 귀기울일 자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심하고 징징대길 좋아하는 나는 sns를 안한다, 아니 못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나처럼 묵언하고 있는 것 또한 비겁함의 이면이지만, 불이익을? 혹은 칭찬을?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앞날의 두려움을 딛고 행동하고 나서려는 그 자체에 뒷방에 숨어 조용히 투덜대고 있는 것은 더욱 보기가 싫다. 내가 실망했던 것은 그래, 반대할 수도 있는 건데 왜 다시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자들의 의견은 수용하지 못하는 찌질함을 보이냐는 거다.

 

모두 'yes'할 때 'no'를 외치고 주장하면 그 또한 필요한 논의로 진척될 수 있다. 뜨거운 냄비처럼 우르르 몰렸다가 어느 순간 차갑게 식어버리는 기류 또한 우스운 일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김규항 씨를 매우 존경했다. 그의 의견은 언제나 가장 비판적이라고 생각한 데에서 한 걸음 더 비판적인 고찰을 더하면서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여론이 두렵다. 나를 미워하고 싫어할까 봐 두렵다. 충분히 그렇다. 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할 것 같다. 그래서 의견을 낸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용기가 없으니 적당히 조심하면서 조용히 사변적으로 숨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비판을 받았을 때, 각자 생각대로 살면 된다는 답변은 정말로 비겁하다. 각자 자기 생각대로 소리만 낼 뿐 신경쓰지 말라는 식의 태도는 애초에 발언의 의미에 모순을 남긴다.

 

말은 정말로 쉽다. 말은 그냥 내뱉으면 그 자체로 성사된다. 그런데 실천은 완전히 다르다. 실천이 얼마나 힘든지는 해본 사람들이 제일 잘 알겠지만, 그것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두려워도 실천하는 사람들을 쉽게, 또 그럴듯하게 매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오늘도 쉽게 말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