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야성의 부름 by 잭 런던

바보어흥이 2019. 2. 21. 17:59

고작 40년을 살다 간 작가가 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 널리널리 퍼져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남았다. 포스트모더니즘 시인 제임스 디키는 런던을 "자연 세계에서 생존하려는 무의식적 충동을 작가 개인의 창의력과 연관시켜서 가장 잘 그려 낸 작가."라고 평했다고 한다. 


스토리의 잘 짜여진 하강과 상승 곡선이란 이런 게 아닐까. 세인트버나드와 스코틀랜드셰퍼드 종의 피가 흐르는 65킬로그램의 벅은 귀족의 애완견으로 위풍당당하게 살다가, 한 인간의 생활비 부족으로 팔려 가 가혹한 매질 끝에 다시 태어난다. 1897년 가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벅은 썰매를 끈다. 금방 그곳의 생리를 파악한 벅은 창의력이 있었으므로 목숨을 건 싸움 끝에 대장이 된다. 그러나 여러 번 주인이 바뀌고 가장 멍청한 주인을 만났을 때 벅은 죽음에 가장 가까워진다. 그런 벅을 구해준 건 손턴. 세상에 다시 없는 사랑과 평화가 이어진다. 내가 눈물을 찔끔 흘린 부분은 여기다. 


"벅,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만."


이 말에 힘입어 벅은 꽁꽁 언 500킬로그램짜리 썰매를 100미터나 끌어낸다. 나는 도저히 동물이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 맥을 못 춘다. 동물은 인간의 세계에서는 희박한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로 큰 돈이 생겨 새로운 개척지를 떠난 이 무리. 예전보다 한가해진 벅은 야성의 부름에 먼곳을 돌다 왔는데, 손턴은 인디언 부족에게 살해당해 있다.


이 미친 상승과 하강에 흠뻑 빠져 같이 눈물 흘리고 마음 아파하며 안도하지 않을 독자가 몇이나 있을까.  


동물을 주요 인물로 상정했을 때 가장 평범한 전제는 인간보다 동물이 약하다는 인식이다. 대표적으로 주인-보좌 관계다. 하지만 벅은 인간조차 쉽게 죽일 정도로 강하다. 강해서 아름답다는 야성의 진리에 들어맞는 캐릭터다. 


단편 불을 지피다 또한 손을 놓기 힘든 흡인력이 있다. 영하 70도에 육박하는 추위 속에서 사소한 실수로 목숨을 잃는 데까지 이르는 과정은 거의 심리적 고문에 가깝다. 해설을 보면 마르크스의 애독자였던 런던의 초인정신은 언제나 사회적 협동이나 이상적인 팀워크로, 반드시 친구와 함께 가라던 선임의 충고를 무시한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불행한 유년, 모험심, 자유정신의 소유자로 한국도 왔다는 작가의 거의 극에 달하는 대자연의 위력, 혹한의 모험이 뛰어난 지성과 만나 탄생한 작품. 강철군화나 런던이 본 조선 이야기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