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어떤 소송] [남아 있는 나날]

바보어흥이 2017. 10. 13. 09:53

요즘 어느 때보다 소설을 읽는 빈도수가 잦아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맥락같은 것이 잡힐 듯한데 그것은 각 작가의 정신 세계를 표현하는 문장이나 화두 같은 주제가 100이면 100 다 다르다는 것.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컨대 이번에 읽은 율리체는 대단히 똑부러지는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 유럽스럽게 개인의 자유에 대한 현대적인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고나 할까. UN에 근무하고 법조계에서 일한다는 그녀의 이력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은 [어떤 소송]은 미아 홀이라는 마치 작가를 닮았을 것만 같은 체제 순응주의자가 남동생의 사회적 타살을 겪으며 체제에 반대하기 시작하는 이야기다. 건강 우선주의 체제 '방법'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모든 건강기록을 국가에 의무적으로 제출하고 관리당한다. 미아 홀은 상심에 젖어 이를 게을리하다가 국가와 대항하는 투사로 변모하고 그녀의 모든 고난은 '관찰당하는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을 증명하는 듯보인다. 끝까지 그녀를 투사로는 만들어주지 않는 영리하고 얄미운 국가를 통해 오늘날 국가들의 도를 넘는 관리감찰을 꼬집는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소설을 정말 잘 쓴다는 생각, 그리고 그의 소설은 1초 정도는 소재주의인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다 인간과 인생의 관계를 깊이 있게 그리고 있다. [남아 있는 나날]은 사실 배경만 과학소설이지 본체는 그냥 순문학이라 봐야 맞는데 특히 클론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알면서도, 조금은 행복해지려고 소박하게나마 3년을 벌어보려는 노력을 하지만, 결국 순응하고 슬픔을 감내하는 것 자체가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남아 있는 나날] 또한 사실은 잘못된 기반 위에 선 집사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내내 얼마나 '옳았던지'를 항변하지만 결국은 옳지 않았다는 것을 독백으로 마무리하며 보여준다.  '스토리적 재미'를 가미한 것 같지만 사실은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어떤 회한적인 시각이 잘 드러난다. 


**다이어리 안가져와서 블로그에 기록용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회사 책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