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여름 탈진
바보어흥이
2013. 6. 14. 16:54
어디의 사원도 아닌 회사원 아무개씨. 아무깨씨?
정신줄이 나간 정도를 표현하는 문장, 희한한 독창성을 자랑하는 라임이라도 만들 기세.
그렇다. 그토록 욕망하던 보약도 못 먹었고 글도 못 썼다. '못'이라는 말의 쓰임새에 대해 조금 더 강박적일 필요가 있다. 못 한 게 아니라 못한 거고, 못한 것에 더하기 안 한 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노니까 글 쓸 시간이 없지." 잔뜩 골이나서 한 말이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아픈지도 모른다. 욕망이 어긋나버려 탈진한 것과 같다. 어깨도 아프고 등도 아프고 잠이 오고 기운이 없다. 무한정 쏟아지는 잠도 우울증의 한 증세라고 유경험자가 말해주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그토록 그토록 좋아하던 여름이 왔는데.
한 달에 한 번, 빨래 하기가 버겁다. 나에게 빨래는 언제나 밀린 숙제다.
그 원인은 집이다. 나는 집에 있으면 돌아버리는 정신병 환자처럼, 집에 들어가질 않는다. 피아노, 기타, 재봉틀, 예쁜 화분 등 집에 정을 붙여보려고 준비해놓은 모든 것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심심해지자. 잿빛투성이 자루를 뒤집어쓰고 총천연색 안감을 누려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