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영원히 앳된 얼굴

바보어흥이 2020. 6. 23. 16:46

여전히 연락하면 닿을 것 같은 두 후배의 영정사진이 떠오른다. 카톡을 보내면 '네, 언니 우리 봐요!'하고 답이 올 것 같다.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살아 있다는 것과 죽은 것을 조금 더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 나의 죽음에 있어서도 조금은 초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저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했다, 하는 충만감을 잘 지니고 있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사는 법 아닐까. 

하고도 까먹어버리지 않고, 하면서도 즐거웠다는 것을 잘 기록하고 추억하는 것이 사는 스킬 같은 것 아닐까.

팀장은 돌연 동갑내기 지인의 부고를 접해 자리를 비웠다.

sns에서는 어떤 미녀가 죽은 언니의 아름다웠던 사진을 올리며 여전히 명랑하게 추억하려고 애쓴다.

 

자연스레 두 녀석의 보송보송한 얼굴이 떠오른다.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기를 바란다. 

그냥 지우개처럼 지워졌기를 바란다. 

 

다만 기억하고 있다. 함께 늙어갈 것처럼 여겨진다. 

시간이 흘러 얼굴이 많이 달라진다면 그제야 후배의 나이 든 얼굴을 몰라 우왕좌왕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을까. 

항상 궁금하다. 죽음과 동시에 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