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인스턴트 생일상

바보어흥이 2017. 1. 15. 15:55

낯선 나라에서 동반자의 미역국을 끓여주기란 다소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미역이라는 게 한중일을 넘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래도 다행히 한인들의 덕을 보아 생일상을 차려냈다. 햇반과 인스턴트 미역국과 인스턴트 김치와 인스턴트 장조림, 그리고 김. 아직 뱅매에게 미역국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매우 궁금해하는데 안 가르쳐주는 즐거움을 저녁까지만 즐길 생각이다.


이곳의 신입사원 월급은 1만5천바트 정도. 경력이 쌓여 잘 벌면 3만바트 정도라고 한다. 물가가 싸다고는 하지만 과연 현지인들에게도 싼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심지어 수입차의 가격은 우리 나라의 1.5배에서 2배가량까지 한다고 하니 여기서의 부자는 진짜 큰 부자인 셈이다.

어제는 보리코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지구상의 어디로 가든 우리의 공허함을 해결할 파라다이스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현지인 남편과 결혼하여 아기자기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한눈에 부러울 법한 분도, 식당을 옮겨와 치앙마이에서 운영하고 있는 분도, 나름의 행복이 있겠지만 익숙해지면 그 나름의 고달픔이 있을 것이다. 결국은 남들은 어찌 볼지 몰라도 나 혼자서 신나는 미션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한국의 정치나 교육 체계, 그리고 회사에서 겪어야 할 자아 정체성의 말살 등 때문이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점과 적어도 차별에서 자유롭다는 이점들이 있다. 치앙마이에 머물러 보니 날씨도 한 몫하는 것 같다. 한국은 1년의 대부분이 너무 춥거나 너무 덥다. 정말 물리적으로 추워서 뭘 못하거나 더워서 뭘 못하는 날들이 예상외로 많다.


여행에서 하나라도 남겨가자 싶어서 쓰던 것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제 정말 일주일도 안 남았다. 귀국이 곧 마감인 셈인데 사실은 돌아가도 한 달여를 더 쉴 수 있다는 보루가 혼자 정한 마감일의 공고함을 좀 누그러뜨린다. 아, 안되는구나 깨달았을 때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냥 자리를 지켰다.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그냥 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중요하다.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