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지, 떠오르는지 모를 시간에
인간은 배신하는 동물이라는 오래된 말을 잊을 정도로 나는 가끔 순진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권력이라는 위대한 발명품을 지인이라고 해서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믿음으로 관계를 공모해왔던 사이라도, 내가 상대에게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사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힘으로 독해진다고들 한다. 내 독기는 그 무르기가 두부보다 더 해서 하룻저녁 불타올랐다가 다시 물에 술탄 양 무화되기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오늘 나는 지치지 않고 또 한 번 독기에 타오른다.
적어도 나는 이번 생에서 성인군자를 목표로 태어나지 못했다고, 이제는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세속적인 다양한 양태를 미워하는 불순분자를 가지고 태어나기는 한 모양이다. 그것이 또한 ‘세속적인’ 자격지심에서 출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순이지만, 묘하게도 지인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면 슬프고 화가 난다. 내가 그를 그렇게 대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도 나는 그다지 성숙한 인격체가 아니므로 그 즈음에서 내 믿음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어야 한다. 앞으로는 착한 척하지 말아야지. 어휴 이 등신아.
가끔씩 불현 듯 ‘아, 그렇구나. 그건 정말 안 되는 거구나.’ 라는 다양한 깨달음이 불쑥 끼어든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하나하나 체화해가는 중이다. 예를 들어 ‘아, 사람들은 사실 공정한 사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아, 나는 정말 죽음을 기다리는 노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아, 행복하게 결혼하려면 적어도 얼마는 있어야 하는구나.’ 등. 그렇게 내가 가진 얼뜬 무모함이 하나하나 벗겨진다.
그러나 이 모두가 내 잘못이라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저 ‘비뚤어질 테다’라는 치기어린 다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평생 자유롭기 힘든 그 신경증적 자아도 서서히 이별을 고해야 한다. 삶의 목표라는 게 살아보니 별 게 없지만, 그래도 뭐 아무거나 책상머리에 붙여둘 만한 것은 있어야 살맛이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