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by 밀란 쿤데라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 소설 [인간의 양](1958)
... 그들 중 교사 하나가 끝까지 대학생을 따라온다. 그가 내릴 때 따라 내리고 집에까지 따라가서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어 그가 당한 수치를 공개하고 외국인들을 고발하려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은 둘 사이의 격한 증오로 끝난다. 비겁함과 수치, 정의감이라는 허울을 쓴 경솔한 가학성 등을 이야기하는 놀라운 소설이다.
작가는 '일본인' 승객이라고 꼬집어 말하면서 왜 병사들의 국적은 밝히지 않을까? 정치 검열 때문일까? 문체의 효과를 노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소설 전체를 통해 일본 승객이 미국 병사와 대립한다고 상상해 보라. 이 한 단어가 분명하게 언급됨으로써 소설은 결국 정치적인 텍스트로, 점령자에 대한 고발로 귀결되고 만다. 이 단어 하나를 포기함으로써 정치적 측면은 어슴푸레한 빛에 싸이고 소설가가 관심을 가진 주요한 문제인 실존의 수수께끼에 조명이 집중되기에 충분해진다. (96-97)
오래전부터 나는 젊은 시절은 서정적 시기라고 생각해 왔다. 다시 말해서 한 개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고 있어서 주변 세계를 보지도, 이해하지도, 명료하게 판단하지도 못하는 시기라고 말이다. 이러한 가설을 근거로 보자면 미성숙에서 성숙으로의 이행은 서정적 태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124
반서정주의로의 개종은 소설가의 이력에라면 반드시 들어 있는 기본 항목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진 소설가는 갑자기 거리를 두고 자신을 본다. 그러고서는 자신이 그렇다고 여기던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이런 경험을 해 봐야 소설가는 누구나 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 아니라는 점과, 이러한 오해는 너무도 일반화된 기본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29
훌륭한 외과의사가 받는 인정은 영광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대중의 존경을 받는 게 아니라 그의 환자나 동료의 존경을 받는 것이니까. 그는 균형 잡힌 삶을 산다. 영광은 불균형을 이룬다. 운명적으로 불가피하게 영광을 얻게 되는 직업들이 있다. 정치가, 모델, 운동선수, 예술가.
그중에서도 예술가의 영광이 가장 끔찍하다. 왜냐하면 그 영광이 불멸할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것은 악마가 파 놓은 함정이다. 예술가의 마음속에 불멸을 바라는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과대한 야심이 반드시 잇어야 예술가는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으니. 133쪽
작가는 이 기구를 독자에게 줌으로써 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기 안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137
정의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치졸한 가학성, 이런 말들.
자아 비대증인 시대라 서정시도 아닌데 자전적 소설을 낼 수밖에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