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

휴가

바보어흥이 2013. 7. 11. 08:54

2013. 7. 7


이곳의 가격은 알 수가 없다. 마치 물건에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미국 같다. 어제는 당장 먹고 지낼 수 있는 음식들을 조금 샀더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금액이 나왔다. 그래도 살 수밖에. 나는 이곳의 생리를 모르므로 그저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다. 갯벌에서 맛조개를 잡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조개의 형상이었다. 나뭇가지같이 생긴 것을 사람들이 잡고 있었다. 저렇게 생긴 게 조개라니. 그러나 우리는 현금을 뽑아오지 않은 불안으로 맛소금과 곡괭이를 구입하지 않고 재수없게 우리 눈에 띈 게들을 잡았다. 총 네 마리. 라면에 넣어서 먹어봤지만 후회했다. 맛도 느껴지지 않고, 딱딱해서 먹을 수도 없었다. 괜한 녀석들을 죽였다.

이따금씩 믿기지 않게도 뱃고동 소리가 울린다. 파도 소리보다 뱃고동 소리가 익숙한 동네다. 뱃고동 소리가 울리면 이곳 사람들은 항구로 모여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예약 안 하신 분? 예약 하셨어요?" 그러고는 미끼를 문 몇몇 사람들을 골프카에 실어 나른다.


아침 다섯 시 경에 대찬 빗소리에 잠이 깼다. 잠이 오지 않아 책을 읽었다. 거짓말처럼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내가 가진 책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르바는 내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빗속을 망아지처럼 뛰어다니고 파도에 몸을 맡기라고 속삭였다. 나는 당장이라도 일어날 기세로 흥분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어젯밤 자기 전에 개구리떼가 머리맡에 있는 듯이 그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소리는 정겹고도 낯설어서 잠들기 전 나를 상념에 빠지게 했다. 무엇이었는지 아무리 기억해보려고 해도 이미 어제라는 시공간과 함께 나를 떠나버렸는지, 아주 조그만 실마리가 어렴풋할 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오늘의 비 때문에 개구리들이 그렇게 몰렸던 거였다. 아, 날짜를 쓰고보니 오늘은 비가 올 수밖에 없는 날이다. 망할 견우와 직녀 같으니라고. 그만 울어라.


7. 8

이 섬에 들어오는 배는 이미 모두 끊겼다. 11시에 육지로 가는 막배가 떠나버렸다. 지금은 11시 반이다.

문득 여행의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를 테면, 낯선 공간에 오면 이왕 놀러 온 김에 일상과 다른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어진다. 인적이 드문 이 섬을 예로 들면, 비가 와도 날구지를 계획한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거나, 낚시 도구를 빌린다거나, 자전거를 빌려 싸돌아다닌다거나 하는 일 등 말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렇게 된다. 귀찮아도 그렇게 된다. 

어제는 잠시 비가 멈춘 틈을 타 해수욕을 하고 왔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바닷가에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들어가 보니 좋았다.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은 것은 처음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해수면 너머로까지 이어지는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기분은, 물이 몸을 온전히 맡겼을 때 든 기분은 두려움이었다. 이대로 흘러가버리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내 발밑에 수만가지의 생물이 살고 있을 거라는 무궁무진함이 두렵게 느껴졌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오늘도, 아마 계속 방에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지구별로 여행온 게 이번 삶이 아닐까? 하는 귀여운 상상을 곧잘 하는 내가 왜 평소에 여행자처럼 굴지 못한단 말인가. 이번 생 전체가 끝이 정해져 있는 하나의 여행인데 말이다. 


7. 10


돌아왔다. 그는 마지막 날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구경하다 문득 이렇게 말했다. 왠지 실망한 것 같아서.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이 섬을 떠올리면 평생 일관된 정서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일관성은 희망에 불과하지만 그 희망이 없이 살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아주 느리게 천착해 있으면서 이곳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내가 그들의 삶을 훔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어찌할 수 없음을 무기로 더 살아갈 것이다. 물론 이제껏 나를 결심하게 한 계기는 한번도 없었다. 어디에선가 항상 그 계기를 꿈꾸긴 하지만.


길을 걷다 으깨진 꽃게를 여러 번 보았다. 이곳의 바다게들은 도로와 숲을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인공의 다리를 건너 옆 섬으로 몇 번 가보았다. 비린내를 풍기는 그물들과 작은 배들이 많았다. 바다는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길은 끊임없이 생겼다가도 지워졌다. 이 섬을 지도에 명확히 그리려면, 어디까지 그려야 하는 걸까. 방금 걸었던 길이 지워진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궁금했다. 


걸레질을 하고 돌아서면 바닥에 그새 소금기와 모래가 어렸다. 처음 도착했을 때 장판이며 이불이며 모든 곳에서 느껴지는 서걱거림은 그 때문이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 도망칠 수 없는 소금과 모래를 인정해야겠지. 모래의 여자를 읽을 때 나를 괴롭혔던 기분에 사로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