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12월 5일 마감날

바보어흥이 2010. 12. 5. 18:03

꾸역꾸역 홍대로 나왔는데 도서관도 자리가 없고 밤새 하는 카페도 자리가 없어 습관처럼 오는 카페에 도착했다. 오늘이 마감날이고, 분량도 30p나 남았지만 바쁠 때일 수록 일탈의 욕망은 강해지는 법!

오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사는 게 재미 없다, 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고 나니 딱히 살고 싶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번개처럼 '재미'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하게 되었다.
'사는 게 재미 없다'는 문장은 반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에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는 지를 역설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정말 조금이라도 사는 게 재미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살아가며,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산다. 정말 소소하게는 오늘 저녁에 시크릿가든을 볼 수 있다는 희망, 아직 보지 않은 무한도전이 남아 있다는 생각, 곧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 맛있는 식사 약속이 있다는 생각, 반가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송년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 사고 싶었던 옷을 살 수 있다는 계획, 곧 핸드폰 약정이 끝나 스마트폰을 살 수 있다는 희망 곧 다가올 토익 시험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등.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재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는 게 재미없다,는 푸념은 위험하다. 이 모든 희망과 계획과 기대가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자살을 실행한 사람은 아마도 이 모든 소소한 욕망, 혹은 위대한 포부가 아무런 두근거림도 행복도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인생을 마감하기 위한 결행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 소소한 것들이 우리를 지탱해 주듯 사는 것은 정말 재미 있는 일이다. 많은 좌절과 많은 포기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어딘가에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과 재미는 언제나 동반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곧잘 재미의 존재를 망각하는 것 같다.

'재미'의 존재를 재정립한 순간, 난 더 재미 있는 일들을 위해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무언가 좀 재미있어졌다.
책은 마감이 만든다. 그리고 마감이 끝나면 계좌에 돈이 들어온다. 이 얼마나 재미 있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