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20160408 벚꽃

바보어흥이 2016. 4. 8. 23:38

사람들 사이에서 와하하 웃고 나면 나는 외로워진다. 나는 조급하게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웃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른다. 궁금은 하지만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그저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안온하게 있기를 원한다. 짧은 지하철 구간을 지나며 견뎌야 하는 시간은 짧은 웹툰으로 초조하게 집중한다.

나의 꿈이 나의 불안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전혀 몰랐다. 무엇을 불안해하고 있는지 꿈이 말하지 않았다면 평생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근거가 있는지는 전혀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진정으로 불안한 자신을 견디기가 힘들다. 어느 타이밍에서 웃어야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떤 적막을 내버려두어야 하는지 몰라 나는 모든 것을 부자유스럽게 만들어버린다. 마치 모든 것이 적대세력이 되어버릴 것처럼, 가위에 눌린 것처럼, 나는 의지가 무엇인지조차 잃어버린다.

내 속에 불안감이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저 불안에게 휩쓸려버린 후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할 뿐이다.

 

나는 타인에게 보여졌을 때 해명하지 않아도 될 삶 속에서 산다. 그것이 나라는 무엇을 마비시키더라도, 대부분 그렇게 산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시간들을 보내는 것. 왜인지 나는 그것을 타인에 대한 배신이나 배려 없음으로 느낀다. 나는 뼛속까지 타인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옆에 가만히 존재하는 것이 편하다.

 

그래서 오늘 나는 어제와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조금은 나를 더 만나기 위해 그토록이나 불편하게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자주 나를 내버려두고 싶었다. 다만 그 후에 혼자 있을 시간만 주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내가 어떤 비열한, 추악한 생각 속에 빠지더라도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간. 이런 시간이 그동안 그리웠다.

 

같은 의미로 나는 어떤 한 사람을 완전하게 알고 있다거나 공유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비참에 빠진 것에 조금 마음을 놓았다. 평생 조금은 낯설게 사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다시 나를 돌아본다. 그 덕에 이제와서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고 꿈꿀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겪게 되는 비정한 현실을 깨달았다. 나는 훌륭하든 훌륭하지 않든,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재미 있는 글을 써내든 써내지 못하든 소설가 이외에는 꿈을 꿀 수 없다. 다른 분야는 프로의 세계에 진입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어떤 감도로 살고 있는 것일까? 예민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선에서 자신을 지킨다는 뜻일까? 요가로 호흡을 하며, 삶은 좋은 것이다라는 문장이 귀에 들렸을 때 그렇게 믿어버리고 싶어졌다. 마음이 놓였다. 불안해하더라도, 지금의 삶은 좋은 것이다. 쌓아온 많은 것들이 배신하지 않고 나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저 나는 불안과 비참 속에 존재하거나 무감각 속에 존재한다. 작은 삼촌이 2년여의 암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나서 아무도 불행해지지 않았다. 작은 삼촌은 그저 한 시절을 존재하다가 어떤 관계에도 깊게 뿌리내리지 않고 사라졌다. 생은 그런 것이다. 아무리 한 인간이 광활한 우주를 펼치더라도, 그의 죽음이 아무것도 다른 생을 침해하지 않는다. 빛이 열렸고, 그리고 다시 어둠이 찾아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