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연초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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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썼듯, 요즘은 조금은 인정하고 살자는 생각이 든다. 당의정이라도, 나를 선순환에 놓이게 할 만한 '기분전환'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할 힘을 불러일으키는 약간의 꼼수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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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일 수 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들어버리는 것. 그것을 우리 업계에선 기획출판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6년을 이 업계에 있으면서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마치 살면서 예쁜 구두를 알아보는 취향은 발달했는데 구두 디자인을 하라고 하면 손 놓아버리고 싶은 그런 기분. 조금은 찾는 시선이 필요하다. 재미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는 것만큼 재미 있을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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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정주언니와 준식오빠를 오랜만에 만났다. 20대 초반부터 만나온 사이여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디스전이 가끔씩 펼쳐지곤 했다. '너 옛날에 비하면~' 식의 외모디스나 '너 예전에 썼던 소설 제목이~' 식의 전공디스. 유쾌한 편이었다. 살다 보니 우리가 서른이 넘어서 이렇게 술을 마시는 날이 오는구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세월의 무상함. 아마도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궁극의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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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를 표현하는 것에는 언제나 주저함이 있다. 별로 길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살면서 배워온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관심 있는 것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드러낼 때, 나는 언제나 주저하게 된다. 마치 동시 중 '용기를 내어 말했다. 나는 못해요.' 같은 느낌. 단순히 부끄러워서는 아니고 실제로 후회스러운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다. 궁극에는 내가 모르는 것을 들키는 것, 혹은 잘못된 생각을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가까운 것 같다. 이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변화의 의지가 없다. 어쨌거나 표면적으로는 주목받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은 내가 언제나 선택해온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