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8시간+3~4시간

바보어흥이 2014. 2. 20. 11:27

주말만이 희망이었던 시절들과 아주 느리게 멀어지고 있다.

 

혼자 퇴근하는 시간이 즐겁다. 셔틀의 압박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런데 내 저녁을 사랑하게 될수록 내 낮의 분배가 어렵다.

어떻게든 하루의 8시간을 저당잡힌 삶인 것이다. 나는 요즘 자꾸 저항한다. 내가 팔아넘긴 나의 8시간 마저 내 시간으로 만들고 싶어서, 나는 자주 업무와 다른 창을 열고, 쓰고, 읽고,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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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내 20대는 대한민국 땅에서 마감했다. 나는 한 발자국도 대한민국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남은 생은 더 자유로울 것이다. 더 나로 채워질 것이다. 이렇게 희망할 수 있기까지도 오랜 길을 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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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는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손이 가는 것은 없다. 애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게 진리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나는 내가 만든 내 책마저 애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일과 나를 일치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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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기록)

카버는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나 또한 화장실 문도 없는 옥탑방에 산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마치 먼 이야기 같기만 하다.

그의 소설은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읽어선 안 된다. 내가 부끄럽고 감당할 수 없어서 감추어버린 어떤 수치를 떠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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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공사,라고 발음하면 조용히 삼삼사구,가 뒤따라온다. 한 시절 나를 지시했던 번호다. 남자들에게 군번 같은 것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20043349. 스무 살부터 스물네 살초반까지의 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