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sthole

9년+1년

바보어흥이 2013. 12. 19. 10:06

헤어지자는 보루만이 희망이었다. 팽팽한 끈을 잘라버리고 양 끝이 발라당 넘어가버리는 순간을 보루로 무수히 많은 갈등을 참아낼 수 있었던 세월이 벌써 10년을 향해 달려간다. 10년. 치밀하게 따지면 약 9년 정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요즘 들어 옛말들이 맞아들어갈 때마다 소름이 오소소소 돋는다. 서른병인듯)이 또 들어맞는지 오늘 아침, 결혼하기 전부터 지랄 염병을 하며 내 한 시절을 얼룩지게 만들었던 가까운 한 친구의 신혼여행 사진을 보면서 갑자기 조금 서러워졌다.

 

나는 어떻게든 모든 동력으로 상대를 잡아 끈 친구의 삶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었는데, 단순히 '그래도 가족이 되었구나 너는.'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가족이 된다는 건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 버릴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무엇이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내가 적극적으로 부정해온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내 가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은 무척 서글픈 존재다. 내 가족을 집 밖에서 보면 괜히 서럽다는 그 싯구처럼, 나는 그 슬픔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게 아닐까. 결국 내가 온 동력을 다해 아무도 믿지 않으려는, 여전히 크지 못한 어린 아이처럼 느껴졌다.

 

나는 근데 그래도 버리고 싶다. 버려도 괜찮고 싶다. 아직 10년을 덜 채워서 이런 모양이다. 철이 안 든 모양이다. 감당할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못난 모양이다. 예쁜 말만 하고 싶었던 2년 전의 나에게 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몰려온다. '그래, 어차피 안 돼. 사람 사이라는 게 원래 그래.'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서로 쉽게 말하고 쉽게 싸우며 쉽게 솔직해져버리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익숙함이 평범한 일상 속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능하리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나는 대체 어디까지 옹졸한 것일까. 요즘은 친구들에게 자주 묻는다. '너는 어때?' 그렇게 남에게서 기준을 빌려와서라도 내가 밟고 선 수치를 재단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답변은 '그건 지나치게 합리적이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합리적인 기준밖에 모른다. 감정과 애정이 봐줄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무작정 나를 사랑하기만 한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오늘 나는 다시 한 칸의 담을 쌓은 것일까, 아니면 한 칸의 담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돌아보면 알 것이다. '그때 나는 그랬던 것이구나. 그 시절을 지나와서 참 다행이다.'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