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솔한 나날들

Posted 2015. 3. 11. 16:23 by 바보어흥이

나는 기본적으로 나를 경솔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나는 호르몬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람이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조증으로 미쳐 날뛰기도 하고, 육류를 폭식하기도 한다. 때로 울증에 빠지면 언어 장애에 빠져 자신을 방어조차 못하고 내모는 사람이다. 또 공정하려고 노력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나를 향한' 비난에 발끈하는 사람이다. 하고 싶었던 말이 있으면 어떻게든, 돌려서든 말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평행선을 놓고 재본다면 이기적인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며, 제멋대로 구는 인간에 가깝다.

 

나는 오늘도 하루종일 키보드를 두드리기를 그치지 못하고 있다. 보도자료를 쓰다가 메신저를 뒤적이고, 할 말이 없는데도 할 말을 만들어내고, 나와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맹비난을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진정될 만한 요소를 찾지 못해 결국은 이리 블로그까지 들어와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오늘은 진정시켜줄 책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모든 책을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읽는 것 같다. 책은 슬픔에서 나를 건져주거나, 조증에서 나를 눌러주거나, 울증에서 나를 꺼내주거나, 경솔에서 나를 구제한다. 이 경솔한 나날들을 자중하기 위해 나는 오늘 책을 읽어야 한다. 밥을 얼른 먹고,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 책을 읽고 싶다. 브레닌이라는 읽다 만 늑대 이야기보다는 오래 전 읽은 소설이 읽고 싶다. 마치 처음 만난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듯이, 사놓고 아직 열어보지 않은 책이 더 끌리고, 심지어는 사고 싶은데 사지 못한 책이 더욱 끌린다. 이 모든 게 경솔한 나날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