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어야 할 만한 2018 한파

Posted 2018. 2. 7. 09:37 by 바보어흥이

2018년의 겨울은 춥다고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2004년 4월에 100년만에 내린 폭설을 잊지 못하듯, 올해의 겨울도 기억할 만한 추위다.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 지역에서는 영하 50도를 넘나들며 사람들이 추위 관광을 갈 정도였다. 계란을 깨면 그 자리에서 어는 모습이 뉴스에 방영되었다. 미국에서는 따뜻한 LA 쪽에 눈이 내려 사람들이 신나 하는 모습이 뉴스에 반영되었다. 제주도는 연이은 산간지방 폭설로 비행기 결항이 이어졌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시리즈를 즐겨 보았는데 이렇게 기록적인 한국의 추위에 마스크도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외국인들이 걱정되곤 했다. 

출퇴근길 방한에 나름 신경 쓰고 있었던 나로서는 하나뿐인 패딩 점퍼 지퍼가 고장나면서 혹독한 추위에 대한 공포가 한층 깊어졌다. 다행히 수선집에서 지퍼 머리를 교체해주어 수습되었지만, 그 이틀 간은 정말 어떻게 해야 추위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아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긴털양말과 패딩부츠, 기모레깅스와 패딩, 장갑, 마스크는 13한 4온의 13한 동안 나를 덮고 있는 필수 아이템들이었다. 13한의 평균 기온은 영하 15도 정도 되는 듯하다. 한마디로 눈 외에는 외부에 노출되는 피부가 전혀 없는 상태. 특히 패딩은 꼭 목까지 지퍼를 잠글 수 있어야 하고 모자가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어떤 친구의 눈알이 시리다는 말이 들어맞는 나날도 종종 있었다. 

감기도 달고 살았다. 작년 초겨울, 올 겨울 한가운데까지 총 두 차례에 감기에 걸렸고 콧물이 멈추지 않아 코가 다 헐었다. 반신욕이 없었다면 피로를 어떻게 풀었을지 오리무중이다. 겨울에는 그저 견디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방출되는 기분이라 운동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마른비만이 다시 기승을 부렸다. 어제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20대 여자가 자리를 권했다. 그 충격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집까지 달렸다. 다시 실내 운동을 시작. 친구의 소개로 레베카 루이즈 유튜브를 찾았다. 


야외활동에 흥미를 잃으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취미를 다시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열렬했던 시간 보내기가 재봉틀이다. 밤세를 밤쇠로 기억하는 어린 시절 친구가 재봉틀을 사면서 다시 일명 뽐뿌질이 시작되었는데 수면잠옷, 누빔 에코백, 빅 에코백, 커텐, 턱받이, 아기조끼, 맥북파우치, 투피스 등을 만들었다. 한 달 정도 주말마다 재봉틀에 미쳐 있었더니 이제 좀 그 열기가 가라앉는다.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도 자꾸 깊은 곳에서 드는 불편함이 바로 글쓰기라서 걱정이다. 글쓰기는 재미 있지만 하기 싫다. 그치만 평생 이럴 거라면 그냥 뭐라도 쓰는 편이 낫겠다 싶다. 


또 시작된 비싼 취미는 바로 카메라. 작년부터 눈여겨보다가 올해 외삼촌이 의외의 선물을 주셔서 시작되었다. 나는 하이엔드 카메라를, 옆지기는 단렌즈를 샀다. 가격은 거의 비슷했다. 하이엔드 카메라를 산 원초적인 욕망은 바로 다카페 일기. 고양이들을 신나게 찍었고 진정 고양이 sns를 시작해야 하나 싶었지만 사실 서평/웹툰/고양이/일상/재봉/사진 등 너무나 하고 싶은 주제가 많아서 역시 어릴 적 고모가 말했던, 재주 많으면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르곤 했다. 그저 원래 사용하던 인스타에 고양이 사진을 조금 올린 것으로 일단 잠잠해졌다. 


'역시 연초 계획은 안 세우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한다. 거창한 계획보다 그냥 하고 싶은 걸 바로 해버리는 게 낫다. 글만 빼고는 모든 것이 얼추 그렇게 되어 간다. 

이제 서른 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