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언제나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빨리 익숙해진다. 신열에 들떴던 사춘기도 지나가면 언제 그랬나 싶을 만큼 말짱해져버리고 죽을 것 같던 이별의 순간도 지나가면 추억 속에서의 아픔으로 밀려난다.
현재에 금방 익숙해지는 것이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로서 유용하게 작용하곤 하지만 수많은 부조리와 옳지 못한 것에도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첫’자가 붙은 모든 것이 가장 인상 깊고 기억에 오래 남듯이 ‘첫’ 이후의 모든 반복은 처음 난 그 길을 따라 가기 마련이다. 처음 한 번 ‘참고 말지 뭐’ 라고 생각한다면 그 다음에도 그 길을 고스란히 밟게 된다. 수없이 많은 발자국으로 그 길이 공고화되면 ‘원래 그렇지’ 라는 합리화로 오래된 길을 포장한다.
환멸도 마찬가지다. 첫 환멸이 반복되다보면 스스로에 대한 환멸도 더 이상 새로운 환기는 없다.
그래서 처음 길을 내는 일은 중요하다.
내가 걸어온 과거 속에 무심히 밟고 지났던 그 수많은 길들을 찬찬히 거꾸로 걸어가보는 일.
기존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샛길을 만들어 두는 일.
내 마음 속의 길들을 죽을 때까지 경계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