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너는 너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는 이 정도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조금 입술을 비죽이며 내뱉긴 했지만 친구는 확고하게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듯했다.
머릿속으로 자꾸만 물음표가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좋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너무 좋은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악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악처처럼. 세상은 선한 것을 이용하니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시가 필요하니까.
오히려 서른이 넘고 나서 깨달은 것은 나도 별것 아니구나 하는 평범하고 절실한 깨달음이다. 나는 이십 대 내내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믿어 의심치 않고 인류애를 가진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회사에서 과중한 업무가 넘어오려 하면 가능한 선에서 방어하는 사람이자 전철에서 (나에게) 무례한 사람을 짓밟아 버리고자 세모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고 매년 인터넷 티비 핸드폰 계약마다 호구가 되는 것이 물려 전화만 오면 날을 세우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일을 더 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피곤한 몸을 기댈 곳 없이 겨우 지탱하고 서 있었을 수도 있고, 어떤 상담원은 진상 손님 때문에 하루를 망쳤을 수도 있다.
대학 때 한 남자 선배가 한 남자 후배의 컴퓨터 속 야동을 발견하고 취향이 실망이라니 하며 다른 남자 선배에게 험담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들 사이의 담이란 너무나 낮고 야만적이어서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했다. 내가 듣든 말든 상관도 없는 노가리였다. 다만 그냥 신경질이 나서 뭐라고 했던 것 같다. 후배는 자주 놀림을 당했고 비호감이었다. 나도 후배랑 친하거나 딱히 잘 대해준 기억도 없었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그 정도의 어설픈 양심이었다.
진실은 상대적이고 시시각각 변하니까. 자만도, 호도도 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