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은 빠르게 지워진다

Posted 2010. 7. 11. 12:54 by 바보어흥이
기록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는 없던 것이나 다름이 없어진다.
어제가 기억나지 않고 그제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추상명사는 희미해진다는 속성을 전제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지워지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만 남은 기억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어제 점심으로 순두부를 먹었든, 김치찌개를 먹었든 그 안의 나는 무엇을 사유하고 있었던 사람인지 잊는다면 기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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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나가는 사람이기보다는 수용하는 사람이다. 배고픔과 욕설과 온갖 폭력에 익숙해지기 위해 서로를 때리고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배고픔을 연습했던 루카스와 클라우스처럼 어린시절의 나는 욕심을 버렸고 그것을 연습했다. 이제 나를 슬프게 하고 나를 괴롭혔던 수많은 '나의 욕심'으로부터 나는 잊혀졌다. 이제 나는 많은 사람들의 욕심을 위해 나의 욕심을 양보하고 진정으로 그것이 조금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나의 욕망은 갇혔다. 내가 나를 위해,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오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가장 음습하고 가장 고요한 곳으로 가서 아무도 모르게, 더이상 누군가에게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비밀스러운 곳으로 찾아가 은밀하게 창문을 열어주는 일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창문이 널찍한 테라스가 되어 건강하게 열리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월요일이면 하나의 사유를 또다시 물거품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