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사장을 보면 동네 양아치 골목대장 꼬마한테 칼을 쥐어준 것 같은 형상이다.
리더십은 둘째, 아니 백번째 치더라도 나이 먹은 값은 최소한 하는게 인지상정 아닐까.
천박하기 이를데없는 돈지랄.
저런 사람들을 보면 돈이라는 전 시대를 통틀어 인류역사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이 존재의 천박성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 수 있다. 돈으로 매겨진 계급이 그러므로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
필연적으로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는 인간애가 없다. 그 관계를 결정짓는 것은 물질뿐이다.
우리 사회는 '참는 것'을 잘하는 사람에게 칭찬을 한다. 더럽고 치사하더라도 참고 내가 잘살면 된다, 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군대도 곧잘 정당화되곤 한다. 10대와 20대 초의 열정과 에너지를 모두 객기로 치부하고 조금 더 윗 사람에게 잘 순응하는 말잘듣는 어른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의 치명적인 한계는 본인이 윗 사람이 되었을 때 발현된다. 그는 자신이 그래왔듯 주변인들을 말잘듣는 개,로 키우고 싶어한다. 개.
이것은 결국 우리의 어린시절, '내가 최고야' '나 이런 것도 있다' '너 내 말 안들으면 죽어'의 변죽에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하나도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내게 처한 문제는 이런 것이다.
감정적으로 굴 것이냐, 이성적으로 굴 것이냐.
물론 나는 얼마든지 둘 다를 행할 수 있다. 지금의 목표로는 약 3달 정도를 더 이성적으로 살아낼 계획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은 이런 사소한 선택이 내 인성에 합리화를 고착화시키고, 불합리한 타협에 익숙해지는 계기나 발판을 마련할까 두려운 것이다.
이제껏 비양심적으로 살아왔듯이 조금 더 비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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