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계절.
나는 여름이 되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어깨를 펴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겨울은 왠지 구속당하는 느낌이다. 어깨, 허리, 다리 구석구석 잔뜩 옹송그려야만 견뎌낼 수 있다. 이런 날씨에 에어컨까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둘이 한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은, 나 하나만 단속하거나 책임지며 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생을 살게됨을 의미한다. 때로는 내 계획과 완전히 다른 모양의 나날을 마주하게 된다. 한마디로, 변화무쌍한 생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둘이어서 더 단단하게 맞설 수 있다는 말들도 많지만 아직 이를 경험해볼 만큼 살아보지는 못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해명하는 삶을 두려워해왔던 것 같다. 내가 어딘가로 떠나는 이유를, 내가 무엇을 먹는 이유를, 내가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남이 이해할 수 있는 것에서 안락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연휴가 되면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명절이 되면 부모님과 친척들을 위해 시간을 빼고, 여름휴가를 대비해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다달이 월급을 받아 대출금을 받고, 아침이면 눈을 뜨고 저녁이면 서둘러 침대에 눕는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다. 가끔 누군가 술을 왜그렇게 많이 마시냐고 했지만 그 정도야, 젊음과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 어떤 이들은 더 안전해지기 위해 남들과 비슷한 삶 속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시험해보기 위해 전혀 가이드가 없는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는 것. 나는 언제나 후자의 삶을 꿈꾸며 전자의 삶을 살아왔다.
둘이 되면서, 나에게 언젠가 닥쳐올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두 배가 된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나는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나는 나의 선택이 아닌 선택을 해명해야 했고, 벌써 거기에서 살짝 지쳐버린 느낌이다. 왜 사람들은 그리도 오지랖이 넓은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했다. 묻지 않는 조언에 대한 불평이 이 세상에 왜 그리 많은지도 새삼 몸으로 느낀다. 상처받지 않은 줄 알았는데 상처받았던 것 같다. 왜 내 시선으로 한번에 봐주지 않는지, 때로는 그것마저 부정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제는 '아주 주변에 민폐를 끼치며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기대치가 없거나 예상을 어긋난 대상이 오히려 자유를 얻는 경우가 많아 보였다.
언제나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것, 그 이상의 해답을 가진 적은 없다. 지금 나의 고민은 응원하는 것에서 더 물러설 것이냐, 더 간섭할 것이냐 두 가지의 기로인 것 같다. 모든 일은 기준이 불분명해서 어디까지를 선택할 것인지가 항상 고민이다. 그러나, 이 또한 나는 모든 것을 관리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그보다는 내 삶을 더 가꿔나가야겠다고 생각도 한다. 상대가 응원할 수 있도록. 왜냐하면 나는 응원할 대상이 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못한다면 꽤나 외로울 것 같기 때문이다.
어쨌든 몇몇의 시선과 물음 속에서 꽤나 담담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보면 내 연두부같은 정신상태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나는 언제나 내 삶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권한을 남에게 주어왔다.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앞으로 한달 간 아무래도 너무 많은 소란을 예약해둔 것 같다. 그저 고요하게, 그것이 설령 밑바닥에 가까워서 나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조용한 편을 선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