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 이데올로기

Posted 2008. 12. 17. 12:48 by 바보어흥이
한겨레 홈페이지에 가면 아직도 좌빨신문이라는 둥, 빨갱이 신문이라는 둥의 댓글이 달려있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나는 반공 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이다. 내 주변도 그렇고 내 아래 친구들도 그렇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세대교체를 이루고도 아직도 반공 이데올로기에 허덕인다.
한겨레는(혹은 경향이든, 프레시안이든 등등) 마르크스주의를 설파하지 않는다. 혹은 혁명을 일으키자고도 하지 않고 노동가치설이 옳다고하지도 않고 김정일 만세를 외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좌빨 운운하는 댓글은 정부에 맞서 생존권을 투쟁하는 노동자의 모습에도, 민중의 권리를 앗아가는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는 기사에도 공공연하게 달린다.

우리는 그것을 어느정도 묵인한다. 그러한 모습이 좌익세력의 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좌익은 무엇인가. 다수의 권리가 상위 1%의 권리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주장 자체가 좌익인가? 빨갱이인가? 혹은 희생받는 소수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그 의견이 빨갱이의 주장인가? 우리는 아직 좌익의 개념을 말할 수 없다. 우리의 머릿속에 레드컴플렉스를 씻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정치적인 주장을 할 때 '나는 중도이다.' '나는 좌익도 아니고 정치도 모른다'며 앞서 밝히곤 한다. 그 이유는 '저 놈 빨갱이군, 좌파구먼' 소리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이 곧 한국에서 좌익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다면-사실 본인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앞서 펼치는 것이다- 지금의 좌익이 얼마나 상식적인 의견을 펼치면서도 공상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분위기에 매도당하고 있는 줄 알 것이다. 국민의 권리와 생존권을 외치는 것이, 복지를 외치는 것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목소리와 무엇이 다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상교육, 무상의료,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반대한단 말인가

어제 자 경향신문 기사 첫머리에 '나는 전교조도 모르고 정치도 모른다, 우리 아이의 선생님을 돌려달라'는 글귀를 읽었다. 바로 이런 것이다. 정치도 모르고 전교조도 모르고 좌익도 모르고 우익도 모르는 한 시민의 주장은 옳다. 그 주장이 바로 좌익의 주장이다. 

또 며칠전에 사회갈등의 가장 주요 원인이 무엇인가, 라는 설문조사를 읽었는데 여러개 가운데 '계층간의 갈등' '이념의 갈등' 이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난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계층간의 갈등과 이념의 갈등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우리 사회는 이 갈등은 절대로 합일되지 않는 갈등이다. 바로 반공 이데올로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노동자 이지만 좌익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빨갱이가 아니거든" 이 논리이다. 그러나 학문적이고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그 둘은 절대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좌익의 이념, 마르크스에서 태어난 좌익의 이념은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대항할 때 논리적으로 합당한 근거가 되기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노동자는 내가 좌익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학문적 무기를 버린다. 그리고 그저 살려달라고 한다. 자본가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생존적 주장을 한다.  

그저 정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좌익이라는 매도는 옳지 않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적어도 나는 정부에 반대하지만 좌익은 싫다는 사람들의 진지한 고민이다. 내 주장은 오른쪽 왼쪽 중 어디에 가까운지. 왼쪽의 주장은 무엇이 틀린 것인지. 그 고민이 선행되는 것이 이 나라에서 레드컴플렉스를 씻을 수 있는 초석이 된다.


* 이 글의 '우리'는 모호한 개념이며 특히 상위 1%나 자본가나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하거나 등등의 사람들은 포함하지 못한다는 점과 한국 정치의 우익과 좌익이 정말 논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느냐의 많은 논의를 건너뛴 점 글이라는 것을 참고해야 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