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라벤이 오고 있다

Posted 2012. 8. 28. 12:23 by 바보어흥이

자려고 온 것이냐고 물은 것은 오전 열 시였다. 나는 자다가 일어났다. 그때 어떤 선이 툭 끊어졌다. 헌신? 희생? 착한 사람 역할 놀이를 하려던 의지 같은 것. 내 안에서 그저 스쳐지나갔을 시간들이 알리바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투적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새벽 내내 들락거리는 간호사 때문에 잠이 들지 않아 뒤척이던 모든 시간들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수면이었기에 수면 자체를 질책 당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지난 시간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래서 나는 자지 하고 티비를 보지 하고 노래를 틀지 하고 맛있는 것을 먹지 하고 즐겁거나 편안하면 안 되는 이 시간들이 몹시 불편해지고 의 억울함에 사로잡혀버렸다. 가만 보면 내가 착한 에 가까운 마음씨를 다잡으면 상대방이 그를 이용하고 힐난하고 비아냥대는 일이 많았는데 그것은 물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으로 꼽자면 언제나 최고의 순간들이다. 어떤 사건들은 그게 한처럼 남아서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떠오르곤 하는데 그 어찌할 바 없이 당한 자국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다시는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고 싶은 게 언제나 드는 생각이다.

물론 그건 농담조였다. 거기에는 몸이 아픈 사람 특유의 악랄함이 평정이라는 천을 뚫고 뾰족이 튀어나온 작은 바늘 같은 거였다. 그리고 곧 아프지 않을 때처럼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나도 그랬던가. 엄마한테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안다. 그 감정을. 한마디로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무엇이 가장 현명한 처리가 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있다. 아플 때 투정은 다 받아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매순간을 의 악령에 사로잡힐 생각을 하니 참을 수가 없다.

태풍의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안온하게 있는 것이 불편하다. 일단은 저 멀리 세워진 타워크레인이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창밖을 하염없이 구경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