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두 가지 부류의 저술가가 있다. 즉 주제 때문에 글을 쓰는 저술가와 저술 그 자체를 위해 글을 쓰는 저술가이다. 첫 번째 부류는 나누고 싶은 사상 혹은 경험이 있는 저술가들이다. 반면 두 번째 부류는 돈이 필요해서 돈 때문에 쓰는 저술가들이다. 이들은 쓰기 위해 생각한다.
"세계는 나의 표상表象이다." 이 말은 유클리드의 공리와 마찬가지로 누구든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진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 듣는 순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명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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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떠 있고 지구는 그 주위를 돌며 밤과 낮 그리고 계절은 바뀌고 바다는 파도치며 식물은 자란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상상하는 그 모든 것은 단지 그 모든 것을 보는 눈, 그것을 인지하는 지성智性, 즉 이미 없다고 전제해 놓았던 것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신은 하늘과 땅, 달과 해의 그 자체, 즉 그것들의 본연本然은 모르지 않는가? 당신이 아는 것은 단지 그 모든 것이 벌어지고 나타나는 현상, 즉 표상뿐이다.
전체적이고 일반적으로 개관하여 단지 가장 중요한 특징들만을 놓고 보면 모든 개인의 삶은 사실 항상 비극이다. 그러나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희극의 성격을 갖는다. 왜냐하면 일상의 분망芬忙과 고통, 순간순간의 끊임없는 당혹, 한주간의 희망과 걱정, 항상 장난칠 기회만을 노리는 우연으로 인해 매시간 일어나는 사고 등은 전부 희극적인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한 소망들, 물거품이 된 노력, 운명에 의해 무자비하게 짓밟힌 희망들, 평생 품고 있었던 슬픈 착각들, 마지막의 점증하는 고통과 죽음은 항상 비극적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우리 존재의 비탄에 조소까지 덧붙이려 한 듯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비극의 모든 고통을 담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면에서는 비극의 인물들이 갖는 품위조차 주장하지 못한 채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우스운 희극의 인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