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1장 뛰어난 퍼커션 연주자는 가장 중요한 음을 치지 않는다
비유에 관한 건 대개 레이먼드 챈들러에게 배웠어요. ... 비유란 의미성을 부각하기 위한 낙차라는 거죠. ... 슬슬 깨워야겠다 싶을 때 적당한 비유를 가져오는 거죠.
작가가 점점 3인칭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는 건 이야기가 진화해서 복합화, 중층화하는 과정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 슬슬 새로운 1인칭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어요.
픽셔널 리얼리티와는 다릅니다. 굳이 말하자면 보다 생생하게 풀어쓴 리얼리티라고 할까요. 리얼리티의 내장을 밖으로 꺼내 새로운 몸에 옮겨 심는 것. 살아서 뛰는 신선한 내장을 꺼내는 것이 중요해요.
이를 테면 저는 이른바 사소설 작가들이 쓰는, 일상적인 자아의 갈등 같은 것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아요. ... 한번 무의식층에 내려갔다 올라온 재료는 전과는 다른 것이 됩니다. 담갔다 건지지 않고 처음 상태 그대로 문장을 만들면 울림이 얕아요.
데뷔 당시 문단에서 제일 싫었던 게 일종의 테마주의였어요. ... 소재나 주제를 전부 걷어내고, 그럼에도 깊이 있고 무게 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2장 지하 2층에서 일어나는 일
물론 저도 무언가와 싸워야 한다는 건 잘 압니다. 사람은 싸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죠. 안 그러면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뿐이니까요. ... '악'과 싸운다는 건 동시에 자기 안에 있는 '악' 같은 것과 마주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말씀이시죠?
유족들 대부분 사형을 바라죠. 그런 이들에게 '저는 원칙적으로 사형제도에 반대합니다'라는 말은 할 수 없어요. ... 다만 객관적인 관찰자의 눈으로 실행범을 바라보면, 그들 역시 덫에 걸린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 인생에는 위험한 덫이 가득합니다. 섬뜩한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나요.
지하 1층에는 자기 자신의 의식과 밀접한 문제가 있고, 그건 생각보다 공유하기 쉬워요.
'나도 모른다. 그게 뭔지는 모른다.' ... 프로그래밍하는 입장과 플레이하는 입장이 제 안에서 완전히 스플릿(분리)된 겁니다. 1인 체스 같은 거죠. 먼저 이쪽에서 말을 움직이고, 그 사실을 잊고 상대편으로 가서 '으음...' 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움직이고... 그런 식으로 의식을 분리할 수 있으면 혼자서도 체스를 즐길 수 있어요.
글렌 굴드는 달라요. 오른손과 왼손이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겁니다. 문장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 이제는 거의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왜 결말이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 장편소설은 읽는 일도 엄청난 작업이잖아요. 그 엄청난 작업을 해낸 사람을 위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아무래도 필요합니다
3장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
결국 우리는 대여섯 가지 패턴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다만 몇 년 단위로 반복하는 사이 형태나 질은 점점 변해가죠. 넓이와 깊이도 달라지고요. ... 문장이 바뀌면, 새로워지면, 혹은 진화하면 설령 똑같은 내용을 몇 번씩 되풀이해도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챈들러가 쓴 비유 중에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라는 게 있어요. ... 만약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드물다"라고만 하면 독자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죠. 예사롭게 휙 읽고 지나갑니다. ... 그게 살아 있는 문장입니다.
4장 설령 종이가 없어져도 인간은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아무튼 확신을 가지고 써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고민하지 말고 뛰어넘어야 해요. ... 일단 시작하면 가는 수밖에 없죠. 뭐가 어찌되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서 끝까지 다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