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라는 허울이 덮고 난 자리에 가끔씩 흠집이 난다. 그 흠집 사이로 보이는 것을 진짜라도 불러도 될까. 흠집을 낸 것은 내가 아니다. 단언컨대 나는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허울을 곱게 바르는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머리가 아프다. 오래전부터 나는 머리가 아픈 것을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내가 단속하지 못한 어딘가에서 경계가 허물어졌거나 구멍이 난 것이다. 대개 신호가 가리키는 정확한 지점을 찾지는 못한다. 그것은 내가 언젠가 버리거나 외면했기 때문에 숨어버렸을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작품은 없지 않을까. 적어도 작가 자신에게는 말이다. 이런 문장이 떠오르자 잠이 오지 않았다. 흠집이 난 자리 위로 생각이 번지고 또 번진다.
욕심이 너무 많은 모양이다. 기대가 너무 많아서 벌을 받는 모양이다. 나는 어쩌면 감당하지도 못할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게 사람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진짜와 가짜. 실재와 허상. 지금 경계가 애매한 사람이라도, 미래에는 둘 중 하나가 되고야 만다. 두통을 겪는 나는 가짜다. 아니, 그래서 진짜인가. 가끔은 나야말로 헷갈리는 경계 그 자체다.
잠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머릿속에 너무 많은 언어가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헐거워서 아무리 많은 이미지라도 머릿속을 꽉 채우지 못한다. 하지만 언어는 A를 규정하고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A'를 정의 내리거나 B를 단언하고 다시 C를 추측하다가 Z까지 가서 혼란을 일으키고 영원한 미궁에서 눈을 부릅뜨고 헤맨다. 결국 나는 그 어떤 정의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하고 마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