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감각

Posted 2019. 10. 31. 16:21 by 바보어흥이

서른 여섯을 두 달 앞두고서야 어른이 된 감각이다. 
감각이라기보다는 삶에서 비롯된 무게를 느끼게 되었달까.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자신이 자신을 책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각. 사실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함께하고자 선택한 생명들 모두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무거운 책임감.

너무나 자명해서 달리 살을 덧붙일 것도 없는 '속'에 대한 진실이 어떠한 장막도 없이 투명하게 내 앞에 놓여 있다. 박완서 선생의 속에 대한 감각에 놀라거나 경이로운 게 아니라 그대로 체화된 공감을 해 버리는 나이가 시작되었다. 
이제까지 조금은 느리게 걸어와서 앞으로 갈 길이 더욱 바쁘다. 그런데 체력은 몸쓸 배터리처럼 소진에 소진을 거듭하고 몸도 여기저기 고장나서 탈각해 버린다. 사망을 선고받은 이를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반대쪽 이가 비슷하게 말썽이다.  20대에 너무나 멀쩡한 이 7개를 뽑아버렸는데, 이젠 더는 사용하지 못해서 뽑아야 한다. 관절도 혈관도 모발도 이런 식으로 쓰임새가 약해져 가는 것이구나 싶다. 

조언을 해주면 잘 듣는 편인데 별다른 조언 없이 살았다. 아주 조금은 남의 말이나 남의 삶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내 탓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금동이가 떠나면서 앙심을 품었나 싶은 생각도 들고, 8년 전 홍대 사주쟁이, 5년 전 강남 사주쟁이, 2년 전 응암 신점쟁이의 한마디들도 하나하나 스쳐간다. 앞으로 아주 힘들 것 같아서 조금 무섭긴 한데 서른 넘어서부터는 가만히 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편이 적성에 맞아서 하려고 했던 것들을 접을 생각까지는 안 간다.

어른인 것이다. 
빼도박도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