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와 실

Posted 2010. 9. 2. 18:03 by 바보어흥이

매일매일을 정해진 시간에 가두었을 때 나는 항상 꿈꾸었다.
이 버스를 타고 정류장을 지나쳐 아무곳에서나 내리기를,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가버리기를,
2호선을 타고 한바퀴, 아니 두 세바퀴를 뱅글뱅글 돌기를,

1년에 몇 번, 오전에 거리를 쏘다닐 기회가 있을 때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려고, 그리고 부럽기 그지없는 그들의 관상을 보려고.

출근하지 않는 첫번째 날,
나는 거리의 사람들에게서 표정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어색함에 쭈삣거리고 행복감에 들떠 얼뜨기같은 내 표정이 부끄러워서였다.

남들은 쉬는 동안 한 달은 꼬박 행복하다고 하던데
일주일 만에 엄청난 편두통이 찾아왔다.
매순간이 압박감이었고, 죄책감이었다.
나는 내 기대보다도 훨씬 못미치는 수동적인 사람이었고 자유를 만끽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어쩔 줄 몰라 한다고 했다. 바로 나였다.

자유로운 시간을 허락받는다는 것은 곧, 스스로가 규칙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음에 나는 지금도 방황하고 있다. 새벽5시에 일어나거나 오후 2시에 일어나거나 하루종일 티비를 보거나 하루종일 비척비척 거리를 걸어다니는 요즘의 나는, 이전보다 훨씬 피곤하다.

일을 피해 도망쳤는데 이제는 24시간 일이 귀신처럼 들러붙어 있다.

내가 어디 즈음에 안착하는 것이 나를 진정으로 '자유케'하는지, 그 적당한 지점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