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자리 선배가 다시 다이어트를 선언했다. 작년을 돌이켜보았을 때 선배는 다이어트를 할 때 저탄고지 식단으로 하루 세끼를 채운다. 점심에는 혼자 나가 비싸고 맛있는 신사동의 샐러드 집들을 돌아가며 들른다. 이번에는 아침으로 삶은 계란을 먹는다고 했다.
저탄고지의 효과가 좋은지 선배는 내가 처음 볼 때부터 그닥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은 아니게 보였다. 나는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고 있지만 도저히 점심에 샐러드만 먹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그저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만 했다. 선배는 남편과 같이 살기를 그만둔 후 살을 많이 뺀 모양이다. 작년부터는 명문 대학원에 입학해 일과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다소 교양 있고 여성스러운 말씨로 선배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배움 욕심도 많은 사람이라 혼자 사는 것도 행복해 보인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면 혼자 사는 것이 더 낫겠구나, 나는 새삼 인정했다.
사실 나는 결혼 덕을 좀 보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혼자 있을 때 고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매일 밤 밖으로 나가 술을 마셨다. 술이라면 절대 마다하지 않는 좋은 파트너도 둘 정도 있었기에 마음 내키는대로 놀았다. 가끔 집에 혼자 있는 고양이에게 미안해 운 적도 있었지만 죄책감이 술을 마시려는 욕망을 이기지는 못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나는 책을 읽고, 외국어를 배우고, 체력이 되면 요가를 하고, 달리기도 했다. 남편과 같이 한 적은 별로 없지만 그냥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자체가 고독의 혼란을 줄여주었다. 그래서 올해 나와 함께 서른 넷이 된, 결혼을 할까 말까 물어오는 친구들에게 무조건 결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종용한 것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 생각했다. 나 같은 외톨이 컴플렉스가 있는 바보에게는 좋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재능 많고 뚝심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척척 해내는 성인 여성에게는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예민함이 극에 달하는 십 대 시절에 옥탑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바퀴벌레의 출현을 두려워하며 침침한 전구 아래 수능 문제집을 풀면서도 뭐 나쁘진 않다 하는 어이없는 낙관주의자였지만 강남8학군을 경험한 어떤 동기는 서래마을 아파트에 살면서도 부모의 불화와 상대적 가난으로 고통스러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토록 사람마다 세상과 주고받는 태도는 천차만별인 것이다.
저녁으로 가볍게 샐러드를 먹고 싶은 날에도 혼자만 식사를 차려 먹을 수 없다. 같이 영화를 보다가 재미가 없다고 해서 갑자기 꺼버릴 수 없다.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옆에서 자려는 기미가 보이면 조명을 낮추거나 꺼주어야 한다. 둘이 산다는 것은 한쪽만의 스탠스를 강요할 수 없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 남자 동기는 예쁘고 비싸기만한 발뮤다 라디에이터를 혼자 사는 아파트에 들여놓는 등 새댁 못지 않은 인테리어 센스를 소유한 모양인데 잠정적 비혼을 선언했고 최근 시나리오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야근으로 바쁜 나날이라고 들었는데 끝끝내 끈기 있게 써온 동기가 대단하다고 느끼면서 역시 비혼의 힘이 컸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동기들의 기쁜 소식을 전해 준 술을 마다하지 않는 나의 친구도 작년부터 혼자 살고 있다. 나는 이 친구가 다시 좋은 상대를 찾아 내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데 그건 우리가 20대 내내 숱한 바보짓을 함께 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안다고 해도 내 생각이 틀릴지도 모른다. 최근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소설가로서 3,4번째 책이 나오고, 문단에서 영향력 있는 후배 동기들을 보고, 영화, 드라마 쪽까지 죽죽 성과를 내고 있는 동기들을 보며 우리 둘은 "우와 대단해!"라고 외치면서 술 약속을 잡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친구 또한 내면에 변화가 있는지 기획pd 쪽으로 이직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출산, 육아까지 동기가 되어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의 마음은 잠시 접고, 친구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