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것은 폭로에 대항하는 폭로. 우발에 대항하는 우발. 장난에 대항하는 장난. 그리고 검색에 대항하는 검색. 그렇지만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면 폭로에 대항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일단은 그러기로 하자.
경기도 안성에 유디라는 공룡이 살고 있었다. 이것은 물론 과거형이다. 공룡이 입을 열기 전에는 모두가 공룡을 공룡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덜 공격적이고 덜 초록색이며, 덜 큰 무언가로 생각했던 것 같지만 이제 와서 공룡 이전에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공룡이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먹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괴담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았다. 자기 이름을 똑바로 발음하지 못해 유디라 불린 이 공룡은 아니라고 했다. 공룡은 괴담의 주인공을 수색했다. 그리고 찾아냈다. 사람들은 그래도 설마 공룡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 소식을 늦게 접한 편이었다. 낮에는 렌즈를 끼고 밤에는 안경을 써서 감쪽같이 변장하는 공룡이 세상에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뭔가 공룡이라기엔 아가씨에 가까웠으므로. 공룡은 저는 유디이입니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이 공룡이라고 믿기엔 세상이 너무 평온했다.
그리고 며칠 후 괴담의 첫 발언자는 날카로운 이빨에 의해 귀 한쪽이 뜯겨나간 채 발견되었다. 공룡은 짐짓 아는 체 하지 않았으나 그것은 공룡의 처단이었다. 공룡은 때론 눈물을 훔치며 이야기했다. 큰 눈을 글썽이며 코를 훌쩍이는 공룡의 억울한 호소는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괴담의 보복을 당한 발언자의 뜯겨나간 귀에서 곧 새로운 귀가 돋아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금세 잊었다. 그리고 며칠 후 공룡의 배에 소주병 조각이 박힌 채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취한 공룡의 배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것은 보복의 보복이었을까. 그러나 공룡은 배로 소주병을 깼다고 말했다. 아니 깨진 소주병 위에 넘어졌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는 공룡에게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이상한 일은 많을 수도 있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도 일주일이면 잊히는 세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더없이 평온한 세상이었다. 그러니까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공룡의 실수였다. 그것은 취한 기운에 원시의 기억이 되살아난, 육식 공룡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알아챘다.
사실 나는 공룡의 여러 술친구 중 하나였다. 공룡은 아주 취했을 때 가끔 날카로운 이빨을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나 또한 매우 취해 있었기 때문에 그 원시의 흔적이 두려운 적은 없었다. 단지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는 이 공룡의 문제는 이름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공룡의 이빨이 너무 날카롭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공룡은 때론 울었다. 여러 사람들이 공룡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들은 공룡이 좋아하는 고기를 잔뜩 사줄 것처럼, 화장실도 치워주고 집도 깨끗이 해줄 것처럼, 그리고 술도 자주 먹을 것처럼 공룡을 꼬셨다. 그것은 물론 진심이었을 것이다. 어디에서 공룡을 그처럼 가깝게, 그리고 친하게 어울릴 기회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공룡을 공룡의 탈을 쓴 사람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오류를 범했다. 사람들은 내민 손을 맞잡은 공룡에게서 진짜 공룡의 원형을 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공룡은 훨씬 공룡이었던 것이다. 고기가 없으면 살지 못했고 게을렀고 술을 좋아했고 노래를 좋아했다. 사람들은 공룡을 보고 수억만 년 전 지구가 멸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이 낯선 애인에게 길들여지기 전에 공룡을 버렸다. 그때마다 공룡은 울었다. 어느 날 공룡이 내게 전화를 했다. 달려가 보니 공룡은 침대에 누워 애처럼 울고 있었다. 혼자 잠잘 수가 없어. 공룡은 훌쩍이며 말했다. 슬픈 공룡은 이를 드러내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공룡의 침대 옆에 이불을 폈다. 그때까지도 난 공룡의 보복을 잊지 않고 있었다. 몇 시간 후에, 울다 지친 공룡은 코를 드르렁거리며 잠이 들었다. 자는 공룡의 얼굴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을 때, 행복했던 지구의 기억과 동시에 서로 잡고 잡아먹히던 무차별적인 폭력이 어려 있었다. 공룡의 세계는 무척 욕심이 많은 세계가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했고 공룡의 이빨에 당하지 않으려면 조심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렇다면 공룡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공룡은 무엇 때문에 이 지구에 왔을까. 나는 공룡과 함께 원시 시대의 꿈을 꾸며 잠이 들었다. 나에게 공룡은 무섭고도 웃긴 술 친구였다.
그리고 이제는 공룡에게 잠시 머물렀던, 그 애인들이 겪었던 공룡의 공포에 대해 말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