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가 큰 창으로 가득 들어오는 방이었다. 아침이 밝아오기 직전에 잠들었다 하더라도 그 방에서 오전 열시가 넘도록 자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를테면 이런 일들이 있었다. 밤까지 진탕 소주를 마셨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아니다. 소주 두 병을 마시고 마지막에 청하를 마셨다. 그래서 두통이 심했던 것이다. 아니다. 더 정확한 이유는 충분히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얇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빛은 정말, 말할 수 없이, 미친듯이 졸린 사람에게도 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묘한 것은 내가, 빛이 다 비칠 정도로 얇은 커튼을 절대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귀찮아서였을까. 일단 절대 부지런하려는 동기 따위는 아니었다. 가끔 데굴데굴 구른 다음 창문이 있는 벽에 붙어 자기도 했다. 그 좁은 사각지대만이 해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보루가 있어서였을까. 어쨌든 나는 그 집에 사는 동안 일을 하지 않았고 대부분 아침이 되기 전에 잠이 들었고 또 오전에 괴로워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이것이 11년 그 방에 대한 기억이다.
그리고 09년도의 그 방.
이상하다. 09년도에는 그런 기억이 없다. 조악하게 울리는 디지털 건반 소리라든가 싱크대에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 그 사이로 가끔 불쑥 튀어나오는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 그리고 빛나는 장판,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들쭉날쭉 자란 고구마의 파란 싹 등이 떠오른다. 그때의 조도照度를 떠올리면…… 정말 적당했다. 이상한 일이다. 지구의 각도가 2년 사이에 틀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창은 여전히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얇은 커튼도 여전히 투명하게 햇빛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 글은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을 전달하려는 의도도 없이, 그냥 발설된 글이다. 그러나 나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어떤 재독 한국 철학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엄밀히 따지면 무의식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그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그 어딘가를 계속 뒤지고만 있다. 근데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답이 너무 많아서이다. 그 중에 진짜는 무엇일까. 몇몇 개는 버릴 수 있었는데 몇몇 개는 도저히 애매해서 분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내가 겪는 고난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이것이 답이야! 이것 때문이야!’ 라고 믿고 싶은 것이 자꾸만 떠오르는데 그것을 이 모든 것의 동기로 인정하기에는 각이 안선다고 해야 하나. 진짜 이유를 회피하는 것인지, 진짜 이유가 아니기 때문인지, 사실은 그 모두가 이유이기 때문인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정말 이상하다는 것이다. 09년도 11년도의 그 방은 왜 다른 것일까. 이것은 현전과 부동성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기억의 왜곡일까? 아니면 그리움이나 아쉬움일까? 아니면 질투일까? 아니면 모든 게 헛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오늘 첨예한 대화, 혹은 만남, 혹은 그 무엇이든 하고 싶지 않다. 근데 특히 말을 할 때 자꾸 불만이 발현되려고 하니까, 내 오늘의 침묵을 최소한의 예의라고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