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s of Sylbia Plath

Posted 2012. 7. 23. 22:26 by 바보어흥이

내가 어디까지 아는지를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스스로를 컨트롤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나에게 내 삶이란 없다. 그러므로 자의식도 점점 흐려져 간다. 내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네 시 반이다. 곧 회사를 나선다는 희망. 하지만 이 희망은 오류다. 회사를 나서서 하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언제나 오늘과 내일이 희망에 가득 찼던 시절, 어떤 재미 있는 일이 일어날 거란 근거없는 믿음과 닮았지만 지금은 알면서 모른 척 하는 부질없는 희망이어서 바보 같다. 휴식에 대한 욕망은 강하지만 적어도 저녁의 욕망은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아침의 욕망이다. 나는 혼자 있고 싶고, 또 혼자 있고 싶지 않다. 나는 가족을 돌보고 싶고, 또 제멋대로 살고 싶다. 욕망이 어찌되었든, 난 대부분 혼자 있지 않았고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가지 않은 길이 궁금한 밤이다. 고요하고 어둡다. 내 방은 쓸 데 없이 넓다. 혼자 있을 공간은 책상 하나와 침대 하나면 충분하다. 거실이 넓고 해가 잘 드는 집에 살고 싶다.

 

짙푸른 하늘은 붉은 하늘보다 매력적이다.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해의 잔해가 하늘을 어둡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구름은 세 층으로 나뉘어 흘러간다. 그리고 저 멀리 구름 너머의 화창한 하늘이 어두운 구름 사이로 아주 조금 보인다. 운동화를 빨았는데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마를 만하면 다시 젖고, 또 마를 만하면 다시 젖는 나날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고집스럽게도 운동화를 들여놓지 않았다. 왜일까. 나는 항상 질문을 한다. 나의 게으름에 대해서, 나의 무심함에 대해서, 나의 무감각에 대하여. 나는 언제나 혼자 있을 때 가장 제정신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너무나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사라져버릴 사랑스러운 나의 고양이, 고통 받는 나의 친구, 홀로 있는 나의 아빠, 젊음과 멀어져가는 나의 엄마,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나의 마지막 청춘.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혼자 있는 것이 두렵다.

 

소박해지려고 열심이었다. 너무 큰 욕심이 나를 불안하게 하거나, 조급하게 만드는 것이 싫어서였다. 나는 점점 비우고 또 비웠다. 그리고 오늘, 돌아보니 내게 남은 것이 너무 빈약해 나는 조금 쓸쓸해졌다. 단 하나쯤은 욕심을 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비우는 욕심을 너무 오래해서인지 익숙하지가 않다. 너무 소중하게 여기다가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썩어버린 군것질거리 같다.

 

오래전 나는 이 일기의 첫 부분을 쓰고 있는 주인공과 나이가 비슷했다. 물론 그녀의 자의식에 비하자면 나는 정말 엄청난 꼬맹이였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그녀의 아픔까지 동경했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 내가 그때의 꼬맹이보다 엄청나게 성숙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직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자랑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난 여전히 그녀의 열정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때와 달리, 지금 내가 아는 것은 아무도 당시의 그녀를 도와줄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 동안, 자신에게서 태어난 비극은, 스스로가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냈든, 자신의 삶을 과도하게사랑한 한 여자가 남긴 사유의 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경이로움과 동시에 복잡함을 전달한다.

 

솔직히 인정하자. 나는 개인적인 절대적 이상형으로 반신(半神)과 같은 남자를 원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런 남자가 주위에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나 혼자 그런 남자를 만들어내려 하는 일도 많다. 그러고 나서는 뒤로 후퇴해 구체적이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시며 문학을 즐기며 만끽한다. 나는 사실 깊이, 정말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낭만적이고 존재하지 않는 영웅을 원한다.’ (175p)

 

나는 지나치게 솔직한 이 일기를 읽으면 무언가 해소되는 느낌마저 받는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돈이 되는 글을 쓰고 싶고 성공한 작가가 되고 싶은 욕구, 그리고 불가능한 남자와의 충만한 사랑을 줄기차게 꿈꾸는 욕구가 정말 지리멸렬할 정도로 그녀를 사로잡고 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회의하고, 다시 욕망하고, 비판하고, 분석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까지 해서 나는 언제나 그녀의 일기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일기는 나의 가지 않은 길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매번 그녀의 일기에 빠르게 몰입하게 된다.

 

참을 수 없는 것 하나 정도는 지켰어야 한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치고드는 걸 보니 나는 지금 나를 연민할 위기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