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신욕을 하면서 가만히 있는 시간, 명상까진 아니더라도 머리를 비우고 있는 시간의 힘을 은근히 즐겼더랬다.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시간의 중심이 된 것 같은 기분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어느 순간 슬며시 해답 비슷한 것이 선명해지듯이 내가 그런 시간들로 인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혹은 무엇이 변할 수 있는지, 혹은 무엇이 약했던지에 대한 방향이 오늘 스며들듯 찾아왔다.
어릴 때 엄마가 산수 숙제를 옆에서 지켜보면 너무나 초조하고 평정심이 흔들려 칠 더하기 오도 못하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그 말도 안되는 상황에 당황하여 끝내 짜증을 내곤 했는데 그때 이후로 엄마는 내 딸이 바보는 아닌 걸 알겠지만 옆에서 채근하면 바보가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삶 속에는 알게 모르게 그런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어떤 관계든 잠깐의 포즈라도 어색함을 유발한다. 무언가를 요청받으면 바로 해결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평정심을 흔든다.
평점심이라는 단어에서 조금 더 좁혀들어간 것은 바로 찰나의 시간. 어쨌든 채근받으면 바보가 되는 천성을 타고난 나로서는 그 시간 확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상대가 어떤 마음이고 어떤 요청을 하건 간에 내가 최소한으로 가져야 할 짧은 순간을 끌어오는 것이다. 문장을 명확하게 끝내고 할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잠시 기다린다. 가속도가 붙는다는 느낌을 알아채면 잠깐 쉬고 다시 제속도를 찾는다. 느릿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해도 잘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며 심지어 느린 것은 잘못이 아니다. 주파수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조금은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요즘 재미로 어플을 통해 사주나 운세 같은것을 몇번 찾아봤는데 모든 이야기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정확하게 아는 건 내가 아는 것 아닐까. 오늘도 나는 이런 사람이라 이런 게 필요하구나, 하는 하나를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