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후드 by 실라 헤티

Posted 2025. 4. 17. 11:36 by 바보어흥이

어머니가 되지 않기란 몹시 어렵다. 한 여자가 아직 어머니가 아님을 눈치채고 그녀를 어머니로 만들어 그렇게 여성의 자유를 덥석 가로채고자 하는 이들은 도처에 있다. 이런저런 남자들, 때로는 그녀의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어떤 젊은 여자나 젊은 남자가 그녀의 눈부신 자유의 길에 끼어들어 그녀의 아이를 자처하며 멋대로 자신의 어머니로 삼는다. 이번에는 누가 그녀를 어머니로 만들까? 누가 그녀의 길을 가로막고 웃으며 말할까? 안녕, 엄마! 세상에는 절박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반쯤 망가진 사람들, 혼란스러운 사람들, 구린내 나는 신발과 퀴퀴하고 해진 양말을 신은 빈곤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며, 이들은 당신이 자신의 비타민을 챙겨주길 바라거나 사사건건 조언을 구하거나 혹은 술을 얻어 마시며 넋두리를 늘어놓고, 당신을 유혹해 자기 어머니로 삼으려 한다. 무슨 일이 벌어나고 있는지 깨닫기도 전에 당신은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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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여성스러운 문제를 손꼽아보자면, 자기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거나 혹은 그걸 허락받지 못하는 문제다. 간신히 얻은 그 시간에 자기 자신을 욱여넣는다. 여자들은 시간 위로 여유롭게 몸을 쭉 펴는 대신 가능한 한 작게 쪼갠 시간 위에 옹송그리듯이 존재한다. ... 그런데 아이를 낳는 일만큼 여성의 시간과 공간을 앗아가는 일이 또 있을까? 여성은 아이를 갖음으로써 자기 부정의 충동을 해결한다. 그런 충동을 미덕으로 둔갑시킨다. 희생하는 마음으로 가장 늦게 밥을 먹는 것, 사랑을 받고 싶어 양보하고 또 양보하는 것, 너무도 여성스러운 행동들. 미덕으로 포장한 자기희생을 대가로 사랑을 받고 싶다면, 아이를 낳는 일이야말로 그런 삶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219

요즘 말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낀다. 언어가 사라져 버렸다. 다채롭고 시끄럽고 신경질을 돋우던 세부 사항들이 희미해져 버렸다. 책을 읽을 때 나는 자꾸만 휘발되는 문장들을 붙잡으려 애를 쓴다. 조금만 내 안에 머물렀으면, 그래서 소란스러운 풍요로움을 간직한 채 그것을 다스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라 헤티의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기의 시간과 공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 주어야 한다. 당연히 그 역할은 성별에 국한될 수 없다. 그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아가 관계 속에 있을 때 인간이 안정감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내주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누군가를 챙기는 행위, 돌보는 행위는 결국 생명체의 근간이다. 우리는 모두 돌봄의 근간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개인적 삶에서 얽매이고 싶지 않다면, 자유로이 들판을 뛰어다니고 싶다면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 선택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실라 헤티는 그래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 싶은지 해답을 얻기 위해 이 책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데 그 가운데에 어쩔 수 없이 곡해의 여지가 발생하곤 하는 것 같다. 예컨대 여성들이 동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추천하는 것은 자신과 같은 지옥에 서 있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낳지 않고서는 절대 보지 못했을 풍경을 함께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흐린 날도 맑은 날도 있는 풍경이며 결국은 좋았기 때문이라고 나에 국한해 주장해 본다. 나로 보자면 인류가 이어져 온 원리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런 거였구나. 이렇게 우리는 가지를 뻗으며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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