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차

Posted 2019. 9. 23. 13:05 by 바보어흥이

집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갖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삶의 피로함이다. 매순간 도망치고 싶어하는데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해 의자에 앉아 있는 형국이다. 빈 구멍이 숭숭 난 한심한 자신을 발견하면서도 더 노력하라고밖에 할 수 없는 궁극적인 고난에 처해 있다. 
언제나 늦되다고 생각하는데 정서적이고 관계적인 측면도 그렇지만 사회적인 면도 그렇다. 나는 공부해야 할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쳐버렸고 그래서 앞자리가 바뀌고 나서야 앞자리가 바뀌기 전에 했어야 할 노력을 하고 있다. 해야 할 것을 미루었기 때문에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이리라. 어거지로 따라갈 수밖에. 
돌아보니 2년 혹은 3년이면 무언가를 얻은 티를 낼 수 있는데 고작 그것을 하지 않아 이렇게 바쁘다. 부모에게 받지 못해 아쉬운 것이 있다면 유일한 것은 조언이다. 우리 부모님은 사랑해서 구속하는 면모가 전혀 없었고 그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다음 세대에게 알려 주기 위해 내가 선경험하고 있는걸까. 
50대 즈음에 돌아보면 지금이라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벅찬지. 사람이 10년 이상 일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무리함을 느낀다. 한국 사회의 예민함과 조직의 빠듯함을 느낀다. 반면 작가라 할지라도 프리랜서의 삶도 녹록치 않음을 안다. 녹록한 것은 없지만 어떤 쪽을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선택이 아닐까. 다소 무기력해도 버틸 수 있는 주40시간의 구속적 안정감과 매번 가진 것보다 무리해서 쏟아 내야만 지속할 수 있는 재능을 무기로 살아가는 시간적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삶.  

신에게 어서 그게 무엇이든 인생의 다음 스텝을 가게 해달라고 조용히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