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에 관하여

Posted 2024. 1. 3. 16:51 by 바보어흥이

사람을 추모하는 일과 고양이를 추모하는 일이 이렇게나 다름을 느낀다. 
사람이라면 그가 내게 했던 말, 그가 하고 싶었던 일, 무엇을 가지고 싶었는지, 꿈이 뭐였는지, 나이가 들며 어떻게 생각이 변화했는지 등 추상적인 영역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기억하며 풍성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 고양이에 대해서, 나는 쑝이 어릴 때 어쩌다 길에 혼자 있게 되었는지, 부모는 누구였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나를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여러 번의 이사 중 어떤 집을 가장 좋아하고 싫어했을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아침마다 쑝을 놀리러 찾아왔던 까마귀들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와 쑝이 얼마나 채터링에 집중했는지, 마당이 있던 집에서 종종 눈을 밟고, 아스팔트 위를 뒹굴고, 화단 구석에서 쉬던 내 고양이의 평온한 몸짓, 나갈 때마다 싫다고 소리지르던 케이지 안의 긴장된 얼굴 등 장면을 떠올리며 나름의 추측과 감상을 더할 뿐이다. 
나는 쑝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자, 잘 모르는 사람이다. 가끔은 정말 궁금해서, 동그랗고 커다란 초록 눈이 나를 빤히 볼 때마다 대체 이 작은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니, 하고 묻곤 했다. 

쑝이 살아있을 때 쓰던 블로그의 글을 과거형으로 고치는 것. 고맙다를 고마웠다로 고치는 것. 
함께 있었던 시간을 과거로 밀어내는 것이 고난했다.

 

그날을 떠올리는 것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쉽지 않다. 내 핸드폰 앨범 속 그 시절은 암흑이다. 고개가 물풍선처럼 늘어지는 쑝을 품에 안고, 그 무게와 감각을 팔에 마지막으로 새기려고 애쓰던 밤. 여러 해 쑝의 죽음을 대비하면서, 나중이 되면 그 감각이 매우 그리워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은 아무리 대비하려고 해도 익숙해질 수 없다. 노련해질 수 없다. 그저 함께 있는 동한 한 번이라도 더 안고, 쓰다듬고, 대화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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