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의 땅 by 천쓰홍

Posted 2024. 2. 13. 09:28 by 바보어흥이

남편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살아야 하는 가장 큰 동기였다. 살아 있어야만 남편이 죽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31

 

나는 귀신이다. ... 기억은 나의 존재이자 순환의 매개다. 나의 기억과 타인들의 기억을 통해 나는 존재한다. ... 하지만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77

 

정말 좋은 문장들이 많은데 그야말로 빨리 페이지를 넘기고 싶어서 기록을 그다지 남기지 못했다. 

 

귀신에 가까운 삶, 다 읽고 나면 귀신이 된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저 태어나고 자랐고 살아갈 뿐인데 그 원한과 사연이 겹겹이 쌓이는 삶, 귀신이 되어 기억 사이를 떠도는 것이 오히려 평안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자전적 이야기를 이토록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힘을 꼭 주고 껴안은 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특히 누나 다섯을 그리면서, 처량하고 섬뜩한 삶인데 사랑하게 만드는 것도 이 작품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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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는 발화되었을까. 발트해에서 불어온 바람에 엄마의 입이 크게 벌어지기까지 우리는 오백 페이지에 가까운 천씨 집안 일곱 남매를 둘러싼 격한 소용돌이를 꼼짝없이 마주해야 한다. 질투, 절망, 살의, 그리움, 후회, 미신, 도망, 귀향, 비명, 스트립쇼, 빨간 반바지, 하마, 백조까지 모든 것을 샅샅이 마주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눈물을 꾹 참으며 엄마의 말을 기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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